다빈치 코드, 무엇이 문제인가?

2021. 7. 1. 02:14적그리스도와 666표

 

다빈치 코드, 무엇이 문제인가?

 

 서 민 호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계명대학교 교수)

 

 

 1. ‘다빈치 코드 (댄 브라운 지음)’의 줄거리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사라’라는 딸을 낳았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딸 사라는 프랑스 남부지방으로 옮겨가 살았다.

 

예수의 후손은 프랑스 메로빙 왕조를 이루었다.

 

이 모든 사실은 중세 때 탬플 기사단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밀문서로 발견했다.

 

탬플 기사단은 비밀문서를 이용하여 교황청을 협박하여 엄청난 돈을 받아냈다.

 

 

교황은 프랑스 왕에게 명하여 탬플 기사단을 거의 다 암살했으나 비밀문서는 못 찾았다.

 

일부 살아남은 탬플 기사단의 후예가 ‘시온 수도회’를 조직했고 현재까지 존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빅토르 위고 등은 모두 예수의 후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비밀을 그의 그림과 작품 속에 암호(code)로서 감추어 두었다.

 

 ‘오푸스 데이’라는 가톨릭 단체가 이러한 증거들을 없애고 예수의 후손을 죽이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실이다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의를 열어 예수를

 

신격화 시켰다. 복음서는 80개나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가 4복음서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금지했다. 예수는 자신의 후계자로 막달라 마리아를 세웠는데 남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구원을 받는 길은 예수를 믿는 것만이 아니고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많은 구원의 길이 있다.

 

 

 2. ‘다빈치 코드’의 허구성과 상업성

 

 

역사적 사실이 전혀 아니며, 완전히 날조된 역사 왜곡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적 이단 종교 사상이다.

 

종교 다원주의-여권운동-성해방 시류를 이용하였으며, 사람들의 호기심

 

(궁금증과 재미)을 이용한 공상소설이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를 자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3. ‘다빈치코드’의 문제점

 

 

(1) 시온수도회

 

 ‘다빈치 코드’의 주장: 프랑스 왕 고드프루아가 1099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직후

 

성배 (聖杯, Holy grail)의 비밀과 상릴(Shangreal) 문서를 지키고자 창설하였다.

 

1795년 파리 국립도서협회는 양피지 기밀문서를 발견하였다.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시온수도회 회원이었다.

 

 

 사실: 시온수도회는 1956년 프랑스사람 피에르 플랑타르드가 창설하였다.

 

플랑타르드는 위조 전문 범죄자였고 반 유대주의자였다. 플랑타르드는 가짜문서를

 

만든 후 몰래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넣어 두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조작하였다.

 

플랑타르드의 사기사건에 가담했던 공범들이 이러한 사실을 자백하였고

 

영국BBC방송에서 사기극의 전모를 보도하였다.

 

 

 (2) 탬플(Temple) 기사단

 

 

‘다빈치 코드’의 주장: 시온수도회가 만든 군사조직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배의 비밀이 기록된 상릴문서를 발견하였고, 이 문서를 이용하여 바티칸을

 

협박해서 엄청난 돈과 권력을 얻게 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5세가 프랑스 왕

 

필립4세의 군대를 이용하여 탬플기사단을 제거하고 화형시켰으나 성배의

 

비밀문서는 받아내지 못했다.

 

 사실: 탬플 기사단은 1118년에 휴 드 페인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다.

 

기사단의 임무는 성지 순례를 가는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기사단은 성지순례자들의 헌금과 이를 이용한 은행업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다.

 

어떤 문서를 발견한 기록은 전혀 없다. 1291년 아크레에 있던 십자군의 마지막

 

요새가 이슬람 군인들에게 함락되자 탬플기사단은 유럽으로 철수했다.

 

프랑스의 필립 왕은 탬플기사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교황에게 압력을 가하였고,

 

군대를 보내 템플기사단을 기습하고 제거하였다. (교황은 오히려 템플기사단과

 

관계를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3) 오푸스 데이 (Opus Dei)

 

 ‘다빈치 코드’의 주장: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 집단으로서, 극단적 고행으로

 

충성을 다짐하는 가톨릭 집단이다.

 

 : 1928년 스페인에서 창설됨. 대부분의 회원은 평범한 가정을 둔 일반인들이다.

 

3% 미만만 성직자들이다. 극단적 고행활동이나 충성 행동은 없다.

 

 

 (4) 성경 형성과정

 

 ‘다빈치 코드’의 주장: 성경은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역과 추가, 개정을 통해 발전되어 온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오늘날의 성경을 만들었다.

 

 사실: 성경은 40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1500년 이상에 걸쳐 기록되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역사이고, 어떤 부분은 개인서신, 회고, 비평, 전기, 자서전, 법률, 예언 등이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고 콘스탄티누스나 바티칸이나 초대 기독교인들과

 

아무 관계없이, 예수님 탄생하시기 수백 년 전인 기원전 4세기경 이미 완성되어 합본으로

 

만들어져 정경으로 확정되었다.(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인 70인역

 

성경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250년-150년 사이에 번역됨. 히브리어 원본에서 추가,

 

개정된 것이 아니고 단지 번역된 것이다.)

 

 윌리엄 올브라이트: “신약성경의 그 어떤 책도 AD80년 보다 더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A.T. 로빈슨: “신약성경 전부가 AD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확실하다.”

 

신약성경은 예수님 생존 때부터 불과 40-50년 이내에 기록된 생생한 역사기록이다.

 

 콘스탄티누스보다 150여 년 전의 기독교 지도자인 이레니우스의 책 ‘이단 반박’에

 

이미 4복음서만이 분명한 복음서이며 공식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F.F. 브루스: “AD180년경에 복음서가 4개라는 생각은 기독교계 전체에 너무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사실로 확립되어있었다.”

 

즉, 콘스탄티누스 황제때 보다 수백 년 전에 신약성경은 정경으로

 

인정되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정경(Canon) 결정 기준:

 

 

1. 사도의 권위성: 바울, 베드로, 요한, 마태, 누가, 마가, 야고보, 바나바

 

2. 교리의 일치성, 구약 예언의 성취성:

 

3. 교회와 교부(church father)들의 공감성:

 

폴리캅(사도 요한의 제자, AD115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년),

 

이레니우스(폴리캅의 제자, AD2세기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