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환율 전쟁, 누가 최후 희생양 되나…냉혹한 힘겨루기

2012. 12. 29. 11:41세계정세


불붙은 환율 전쟁, 누가 최후 희생양 되나…냉혹한 힘겨루기


최근의 가파른 원화 강세는 대내적 요인이라기보다 대외적 요인이 현저하게 우세한 특징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대외 수출을 통해 성장의 탄력을 유지해 온 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에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이미 눈앞에 다가온 미국의 재정 절벽은 극적인 타결 여부에 상관없이 더 이상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포괄적인 조세 감면 혜택의 연장이 어려운 내부 사정을 대변한다. 위기 이후의 경제를 떠받쳤던 재정의 역할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과 이미 과도할 정도로 활용되고 있는 금융정책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향후 환율 조정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조정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는 이러한 환율 조정 부담을 상당 부분 짊어져 왔다. 그 결과 일본은 버블 생성과 붕괴 과정을 거치면서 20여 년의 장기 침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고령화와 자산 선택의 폭이 제한된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실제로 대미 달러 환율의 추세적 절상은 일본 경제를 옥죄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일본은 심각한 재정 위기 상황에서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를 더 이상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진입했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극우파 정부 출범으로 일본 엔화의 본격적인 약세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달러 약세에 추가적으로 엔화 약세 부담마저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될 수 있는 여건이다.

위기 5년 차…아시아로 집중되는 충격파

사실상 2008년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환율 전쟁의 포문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중앙은행(Fed)이다. 80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구제금융 조치 덕분에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은 점은 매우 긍정적인 결과다. 그러나 이후 유로 국가들로 저금리와 달러 약세 충격이 본격화되면서 과도한 조정 부담이 환율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그리스 등 주변 국가들의 재정 위기로 확산됐다. 이제 위기 5년 차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충격의 여파는 아시아로 집중되고 있다.

이미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이 2011년 105%를 웃돌았고 유럽연합(EU)도 위기 이후 100%대를 넘고 있다. 일본은 가장 심각한 재정 위기 상황으로, 정부 부채가 GDP의 230%가 넘고 있어 최근의 소비세 인상과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채 관리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어디를 보더라도 채무 과잉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돈 찍어 내기 즉,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될 양적 완화 정책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해결 구도가 신흥 시장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소위 비기축통화국의 성장 결실인 자산 축적이 한순간에 가치를 상실할 수 있는 극단적 상황마저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경제는 이래저래 '대완화 기간' 중에 쌓아 놓은 고레버리지의 부채 포지션을 정리하느라 엄청난 비용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봉착해 있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며 비용의 분담 면에서 형평성에 상당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따지고 보면 과잉 부채를 초래한 채권·채무 관계는 결국 당사자 간의 문제인데,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이미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문제로 확대된 상태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채무 조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 찍어 내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 피해는 신흥 시장의 수출 주도 경제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 상황을 초래한 주체와 상황 극복을 위해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는 분명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세계경제는 이제 형평성이 훼손된 본격적인 최후의 조정 부담을 안고 있다. 환율 전쟁은 이러한 과정의 클라이맥스다.

지금도 우리 경제의 현실과 괴리를 보이면서 원화는 가파른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갈 곳 없는 세계의 유동자금이 우리나라로 몰리기 쉬운 환경인 것은 틀림없다. 넘쳐나는 외화 유동성은 일견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른 곳에 비해 좋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사실은 큰 부담이다. 이는 이미 우리나라의 자체 유동성만 보더라도 갈 곳 없는 자금이 넘쳐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의 상태는 오히려 관리 부담만 늘리고 경제 기초 여건과 동떨어진 가격 체계를 강요하면서 우리 경제의 위축을 심화시키게 된다.

그렇다고 국가 차원에서 조정 부담을 일방적으로 짊어지면서 고통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운영되는 국가로서 고용과 성장의 기본이 흔들리는 상황에 대해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내 협력을 통해 이러한 조정 부담을 일부라도 경감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가능성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뻔히 보이더라도 환율 전쟁에 내몰리는 것이고 국익 차원의 힘겨루기가 협력에 앞서 우선시 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 정부 출현, 중국의 정권 교체는 역내 협력이 가시화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원해진 역내 협력

따라서 현실적으로 정부 및 민간 차원의 대화를 통해 이전투구식 환율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 과정은 당장 손실 분담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역내 자산의 재평가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역내 차원의 손실이 과다하게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역내 화폐가치의 상승으로 수요 위축이 심화되고 보유 외화 자산의 가치가 폭락하는 상황을 뜻한다. 더욱이 조정 부담의 상당 부분이 역내로 집중되는 현실은 정책 당국으로서 버블 관리와 성장 동력 보호라는 상충된 목표를 조화해 나가야 한다는 심각성을 던져주게 된다.

피해를 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대안이다. 원화 상승세를 활용해 서민 경제의 수입 물가 부담을 경감하고 내수 기반을 확충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환율 안정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외화 유동성 관리 체계를 대폭 수정하고 시장 개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대처해야 한다. 기존의 체제하에서 지금의 문제에 대응할 때 기하급수적으로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서민층과 중소기업의 보호가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환율 안정 노력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환율의 움직임은 금융 위기 이후 강화된 선진 경제의 자구 차원의 노력이 외화 자산 보유 비중이 특별히 높은 아시아 지역의 자본 손실로 연결되는 글로벌 차원의 환율 전쟁이다. 과거의 경쟁적 평가절하로 구현된 환율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특징이 있다. 즉, 상당한 외화 자산 포지션의 변화를 내포하고 채권 등 포트폴리오 관련 자본 유출입이 은행 차입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회적이고 복잡한 경로를 통해 환율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환율 전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아시아 3국으로 불붙고 있다. 한편으로는 위안화의 국제화, 즉 기축통화로의 발전 노력을 가속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3국의 국채 보유 비중 증가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단기적인 시장 환율의 급격한 변화보다 변동성의 확대와 큰 폭의 조정 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과거와 현저히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예상되는 환율 전쟁의 이러한 제반 특징은 여전히 세계적인 조정 메커니즘으로서 환율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침체의 중병을 앓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최종 선택이 양적 완화를 통해 채무 부담을 경감하는 것인 만큼 아시아 지역의 실질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자본계정이 열려 있는 한국은 환율이 급변하고 자본 유출입이 언제든지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정 기조 유지가 매우 어렵다. 이는 우리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가계 부채나 일자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거시경제의 안정 기조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당면 과제 해결의 핵심은 거시 여건의 안정이며 이를 위해 전략적인 대비가 절실하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