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골방의 능력 1부

2013. 1. 18. 10:47성경이야기2


은밀한 골방의 능력 1부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5-6)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구하러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물리적인 골방 이상의 크나큰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나를 찾는 자와 찾지 않는 자!" 의 두 개의 범주로 나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하나님은 '은밀한 기도의 골방에서 주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의 두 종류의 자녀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우상숭배에 대해 노하셨을 때, 모세는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쳤습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오며" (출애굽기 33:7).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중에도 전심으로 주를 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이 사람들은 우상숭배에 빠진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 밖으로 가야함을 알았으며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배교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수세기 후에, 아사왕 밑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적들과 평안케 하신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역대하 14:7).


아사가 통치기간 동안, 수 백만 명의 구스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 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11-13절).


아사가 공격받았을 때, 그는 엎드려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승리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승리를 하고 돌아온 후 아사랴 선지자는 아사를 맞아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15:2).


다시 말해 "네가 여호와 찾기를 멈추면, 즉, 그를 열망하고 그의 이름 부르기를 멈추면 그분도 너를 버리시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아사랴 선지자는 여호와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왕이 의기양양해지고 악을 행할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구할 때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4절).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과 승리를 전심으로 여호와께 구함으로써 찾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역대하 15:12, 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간구할 때 주어지는 평안을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이 모든 걸 여호와께 의지한 채 주께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는 항상 그들을 인도하셨으며 그들에게 계시와 강성함을 주셨습니다.


웃시야 왕의 기록입니다,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역대하 26:5, 15)

웃시야가 하나님을 구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강하게 하셨고 그 왕국에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가 형통하여짐에, 왕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웃시야는 그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치를 당하며 살면서 문둥병자로 세상을 마쳤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구하기를 거절하는 모든 목자들 또한 끊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예레미야 10:21).

오늘날, 소수의 목사들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에 기록된 장면은 정확히 우리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목자들이 게으르고 태만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단지 봉급을 받는 직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대신

자신들의 설교를 위해 책과 주석서를 찾으며 자신들의 물질적인 힘에 의존합니다.

그들은 양떼를 먹이고 보호할 힘을 잃었으며 양떼는 흩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강력한 교회를 유지했던 유대감은 현재 해체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내적인 갈망을 충족하는데 필요한 아주 조금의 것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면서 복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10:20앞)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유대감을 유지했던 하나님의 구속하신 능력의 줄이 끊어져 없어졌습니다.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20절 중). 무리는 흩어졌습니다!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20절 뒤).

제사장들 가운데는 그러한 부정이 있었으며 누구하나 하나님의 거룩함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성막에 들어갈 만한 제사장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예레미야가 기술한 목자의 종류에 대한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목사들은 담대하고도 구체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셨을 것입니다.


기도가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 내에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파멸했습니다 - 하나님이 외면하셨습니다 -

그분은 게으른 목자와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나를 찾는 이가 없구나!"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기도 가운데 그분을 구하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차별을 두셨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 들 중에 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한 골방의 능력이 나온다!

여러분은 골방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실제의 세탁물 골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은밀한 골방"을 갖는다는 것은

간단히 주를 갈망하고 주를 구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재능과 선택된 시간을 드리면서 어느 곳, 어느 때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의 골방"은 "기도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홀로 있는 연습을 하고 계십니까? 기도의 골방은 전적으로 연습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성령님이 부를 때 응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 오게 하는 훈련입니다.

이것은 "나는 하나님과 홀로 있고 싶어, 나는 오늘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끔 혼자일 때 저의 은밀한 골방은 차안이 되기도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종종 저의 서재가 골방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때때로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 가는 곳인 펜실바니아의 작은 시골 도로가 되기도 합니다. 뉴욕시의 거리를 걸을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몇 주전 여러 시간을 거닐었던 플로리다 해변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기도의 종류는 그분과 함께 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친밀감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기도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거룩하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사람과의 극적인 구별을 보여주셨습니다! 위선자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고 거룩한 척 연기하는 연기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 그러한 연기자들이 많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태복음 6:5).


우리의 육체는 칭찬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지은 우리 육체의 속성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는 고쳐지거나 죄가 씻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죽게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성령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십니다. 우리의 육체는 완전히 벗어지고 죽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사람들이 이것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빼고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 마치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위선자들]은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그들은 여러분이 어느 정도 믿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며 기도 모임에 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도의 습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홀로 하는 기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한 목사님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그 목사님은 하루에 8시간을 기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와! 대단하시다. 그 목사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 목사님을 만났지만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저의 생각이 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루에 8시간을 기도했다면, 단순히 그의 인격이 변화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명백하게, 그가 그들에게 말한 대로 그들은 그의 기나긴 철야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