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 - 성령을 좇아 행하라

2015. 6. 18. 16:15카테고리 없음


로마서 8장 1-28절                 방월석 목사

 

지난 시간에 우리는 7장의 말씀을 통해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남편의 비유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율법이라는 옛 남편에서 벗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이라는 옛 남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남편을 만나야 의롭다하심을 얻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도 새 남편인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요, 예수를 믿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도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때 가능합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고, 역시 은혜로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과정뿐 아니라 성화의 과정에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7장에 이어지는 오늘 본문 8장에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살펴봅니다.

 

I. 성령

 

먼저 본문에서 소개하는 성령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의 영 (9), 하나님의 영(9)

 

9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 혹은 ‘하나님의 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하십니다.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꼭 집어 소개한 것은 초대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장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서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조심하라 권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영지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다른 영, 적그리스도의 영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엔 알파코스, 신사도운동, 관상기도와 같은 영성 프로그램들을 통해 다른 영들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영적인 역사가 나타난다고 이를 다 믿지 말고 이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그리스도의 영” 또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른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주요한 사역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 그리스도를 알 수 있고, “진리의 영”(요 16:13)을 받아야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9)인 것입니다.

 

2. 양자의 영 (15)

 

15절부터는 성령을 “양자의 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종의 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항상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갑니다. “이것저것을 행하고 지키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고 끊임없이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는 항상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종노릇하는 ‘종의 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a. 하지만 율법주의라고 하는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15)

 

“아바 아버지”라 할 때, “아바”는 “아빠”라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아바”입니다. 율법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경건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친근히 부르며 또 그렇게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아빠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 사랑하는 자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들을 이와 같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b. 양자의 영을 받으면,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하십니다.

 

‘후사’란 상속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17)하십니다.

 

예수님도 친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제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18)하십니다. 양자의 영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된 후사”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II. 성령의 역할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요,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들을 살펴봅니다.

 

1.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다. (2) 하십니다.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것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십니다. 본문에서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묘사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은 결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새 생명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겁니다.

 

2. 우리를 인도하신다. (14, 28) 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행 2:4)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령 충만(filled with the Holy Spirit)이 무엇일까요 ? 어떤 신학자는 ‘성령 충만’을 ‘성령에 붙들리는 삶’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에 붙들려 성령의 인도하시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이라는 겁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뒤, 스데반 집사는 성령에 붙들려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빌립 집사는 성령에 붙들려 광야로 나갔다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 8:26,27) 사도 바울도 본래는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웠지만, 성령께서 막으시자 드로아 지방으로 내려가 기도하다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행 16:10) 유럽으로 발걸음을 돌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 에베소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14)이라 하십니다. 내 욕심과 생각이 아니라, 날마다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자가 곧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과연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하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하심은 과정 속에는 어려움이 있어도 그 결과를 아름답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애굽 땅으로 팔려가 억울한 종살이 옥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 요셉은 바로 왕 앞에 설 수 있게 되었고,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훗날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만나 그가 꾸었던 꿈처럼 형제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요셉의 실패와 고난도 합력하여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에도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은 언제나 그 결과를 좋게 하시는 즉,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26)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소개한 성령님의 또 다른 이름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요 15:26)는 “옆에 서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Counselor(NIV), Comforter(KJV) 혹은 Helper(NASB)라고 번역해놓았습니다. 상담자, 위로자,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아셨기에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믿음을 지키고 사명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데, 특별히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고, 또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생각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27) 기도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근심케 만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응답 받는 바른 기도를 드리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III. 결론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요 양자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날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13),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좇으며”(6)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3,14절) 하십니다.


이 세대가 가기전에/에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