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예수의 우편강도1부

2020. 7. 9. 02:22하늘나라가는 비밀문

 
요세푸스(역사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유대 땅, 골고다 언덕에 세 명의 남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가운데는 예수, 그분 좌우편에 강도 두 명이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 (막15:32. 눅23:39)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 황제의 체제에 반란을 도모하는 자들에 내리는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이었다.
십자가형은 범죄자들에게 수 일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가한 후 못으로 박아 죽이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통치자들은 피지배국 대중들이 보고 공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십자가형을 공개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들을 구경하는 많은 관중들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을 향하여 침을 뱉기도 하고 욕 하고 조롱 하였다
요세푸스(역사가): “사지를 뻗고서 처벌을 받을 때, 그들은 사형틀을 그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포박을 당하여 가장 뼈 아픈 고통을 받으며, 못 박힌다. 그들의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개들은 모질게 씹어 먹는다”
또한 십자가형은 처형당하는 자에게 최대의 굴욕과 수치감을 줄 수 있도록 벌거벗겨 눈에 띄는 장소, 네거리, 높은 언덕 등에 공개적으로 진열시켰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Jesus Christ)이라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참혹한 고통과 인간적으로는 견딜 수 없는, 수모를 당하는 형벌이었다.
모세도 십자가에 달리는 형벌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육신적인 고통과 굴욕과 수치감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저주받으신 죽음인 것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 하)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격렬한 심판과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해 십자가위에서 비참하게 죽으셨고 모든 피를 다 쏟으신 후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23:39)
 왼편 강도의 십자가는 형벌의 십자가다. 이 강도는 자기의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다. 왼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평생 지어왔던 흉악한 죄에다 창조주를 조롱하는 엄청난 죄를 추가하면서 죄를 짓고 있었다.(눅23:39)
 우리 또한 우리의 죄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 강도처럼 걸핏하면 죄를 짓고 거기에 더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모욕하고 희롱까지(예수의 아내와 같은 기사) 한다. 오른편강도처럼 예수에게 요청해서 천국으로 가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그냥 입 다물고 사는 게 죄를 더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그 십자가는 바로 나와 여러분이 달려야 할 십자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운데 서신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죄로 인해 지옥행은 우리들의 숙명인데 하나님은 죄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으신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덮어씌운 다음 처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신 것이다.
 [하나님은 왜 뒤 늦게 구세주를 보내셨는가? 하나님은 항상 같은 심정이셨으나 오래 참으시는 중에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위대하고도 말할 수 없으리만큼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것을 오직 자신의 아들에게만 알리셨다. 예정된 때가 되자 그분은 스스로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셨다.
 죄인들을 위한 거룩한 분, 사악한 자를 위한 흠 없는 분, 불의한 자를 위한 의로우신 분, 타락한 자들을 위한 순결한 분, 죽은 자들을 위한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인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신 것이다.
 세상에 그분의 의로우심 말고 우리의 죄악을 덮어줄 수 있는 분이 다른 것이 있었는가? 사악하고 죄 많은 우리들을 용서해 줄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말고 누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의 사악함이 의로우신 한 분 안에서 사라지고, 한 사람의 의로움이 많은 죄인들을 용서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꿈같은 변환이며 얼마나 놀라운 일이요 또 상상을 초월한 커다란 은총인가!'(순례하는 교회에서 p,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