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 앤드류 머레이

2013. 11. 29. 22:55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 앤드류 머레이

 

 그리스도의 생명 바로 그것이 우리의 것이 돠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그가 인자로서 이땅에서 사셨던 그 생명 말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속에서 우리 주님은 그생명의 본질을 설명하시면서 
더욱더 강력하게 이 점을 강조하십니다.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임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육체가운데 있는 영생을 드러내며
육체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영생이 신적인 능력 가운데 거하고 있음을 
육체적인 몸 안에 그 생명이 거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자기의 살을 먹고 자기의 피를 마시는 자들은 곧 그의 몸을 
그들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삼아 거기애 참여하는자들은 그들의 몸안에서도 
영생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인간의 몸안에 있는 
영생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그 몸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비로소 우리의 몸도 그 생명을 소유하게 되고 
마지막 날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료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참된"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하실때에 사용하셨던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주님은 이단어를 사용하심으로써 그저 상징에 불과한 것과 
실질적인 실체인 것 사이의 차이를 암시하신 것입니다.

이땅의 양식은 참된 양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생명을 가져다 주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참된 양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가져다 주고 유지시켜주며 더구나 그림자처럼이나 
그저 상징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그렇게 자주 반복하신다는 것은 곧 주 예수님의 살과 피가 
충만 하고도 참된 의미에서 영생이 우리 속에서 영양분을 받고 유지되는 
참된 양식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료다"
이 양식의 실재와 능력을 지적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은 "내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안에 거하나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일은 주님과의 지극히 완전한 
연합의 효과를 이루어 냅니다.

그이 살과 피가 그런 영생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기서 그를 믿는자들은 그저 그에게서 마음에 이런 저런 
영향을 받는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와의 지극히 친말하고 또한 영구히
지속되는 연합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안에 거하나니"


그러므로 인자의 피를 마시는 축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요 
그와 함께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연합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이냐 하는것을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7)

우리주님과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이외에 그 어떠한 것도 
주님과 우리의 연합의 모형이 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로 나뉠수 없는 신적인 본성에 있어서 두위격이 참으로 하나이신것처럼 
그렇게 사람이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연합이 두분 하나님 사이의 연합과 마찬가지로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몸을 떠나서는 존재힐 수 없기 때문에
이연합에 몸도 포함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인간의 몸을 취하실 그 몸을 스스로 준비하셨습니다.
이 몸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말미암아 영생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고 
우리 주님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존재가 된것입니다.

이 축복을 충만히 받기를 사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라는
고룩하고도 신비한 표현을 통해서 성경이 베풀어 주는 모든것들을 조심스럽게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음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2. 이 축복이 어떻게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가?
혹은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나타나는 첫번째 사상은 "마신다"는 것은 그피의 능력에 관하여 
우리가 개닫는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우리의 영으로 깊이 
진정으로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연사의 말에 흠뻑 빠져서 그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경우에 
그 사람의 말을 "마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의 보배로움과 능력에 대한 감각으로 
가득 채워질 경우 그가 그피에 대한 생각에 완전히 빠져서 기뻐할 경우
그 사람이 전심의 믿음으로 그피를 스스로 취하고 그의 속마음으로
그피의 생명을 주는 능력을 납득하려 힘쓰는 경우에 우리는 그사람이 
"예수의 피를 마신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피로 말미암는 구속과 깨끗이 씻음과 거룩하게 함에 대해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그의영혼 깊은 곳으로 흡수해 들이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는 아주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피로 말미암는 충만한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이 표현이

아주 영광스럽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표현을

거듭거듭 사용하심으로써 이보다 더한것을 의도하신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의도하신 그더 깊은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것은 주님이 성찬을 제정하신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가버나움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실제로 성찬을 다루고 계셨던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훗날
성찬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에는 성찬에 대하여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개혁자 츠빙글리의 이름을 따라서 불리는 한가지 견해에 따르면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저 영적진리의 증표 혹은 상징물로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우리의 몸에 영양을 주고 새힘을 주는것과 똑같이 그만큼 확실하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닫고 우리의 것으로 삼은 주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혼에 영양을 주고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이름이 붙어있는 또 다른견해에 다르면 성찬에 참여하는 일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모종의 감추어진 방식으로 사람이 깨달을 수 없는 빙식으로

그러나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부터 영양을 받아서

삼지어 우리의 몸조차도 주님의 몸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의 능력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몸의 부활과 성찬 시에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일과 연관을 짓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성찬이 요구하는 육체적 임재는 여기서(성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그것이 우리의 영에게 영생에 대한 의심할바 없는 확신이 될 뿐 아니라

육체의, 불멸까지도 확신하게 해준다.

이것이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부끄럼없이

그것은 너무나 높은 신비여서 나의 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고

나의 말로써 표현할수가 없더고 시인할 것이다.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내가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살이 그렇게도 무한히 먼거리에서 우리에게 도달하여

우리의 양식이 된다는 것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 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우리의 감각을 초원하는 것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해력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것을 믿음으로 포용하여야 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의 살과 피를 신성하게 전달하셔서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심어주시며

그것이 마치 우리의 뼈와 골수를 찔러 관통하듯 한다는 사실말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전달받는 일은 
영생을 유업으로 받기를 사모하는 모든이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1:23)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력하고 상합하여 각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몸을 자라게 하느니라"

(엡4:15,16)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고전6:15.16)
그리스도께서 몸과 영으로 우리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은 우리도 잘아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다시 "우리는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쳬라"는 
영광스러운 표현을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다음 그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주님의 살과 피 안에서 하나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것입니다.

사도는 그 하나됨의 역사가 너무나도 높고 귀하여 그것을 해명하기 보다는 
그저 그것에 대하여 놀라워하는 것입니다.

성찬에는 그저 신자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누리는것보다 
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 제76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가 흘린 피를 마신다는것은 
무엇입니까?"그답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으심을 포용하여 
죄사함과 영생을 받는다는 뜻임은 물론,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또한 동시에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신성한 몸과 점점 더 연합되어 우리가 -
물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위에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의 살중의 살이되며 그의 뼈중의 뼈가 되어 영원토록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배를 받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에 표현된 사상은 성경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실때에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들과 사람을 구분지어주고 
사람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가 흙으로 지음받은 몸으로 영적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몸을 통하여 욕심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몸을 구원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거처로 삼기 위하여 
충만한 구속이 계획된 것입니다.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질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로"주님 안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가 그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지신것이요,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영은 물론 육체까지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구속의 첫 열매들로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이며 한 영인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몸에 그의 살에 그의 뼈에 속한자들입니다.

성찬을 지키는 가운데 주께서 몸에도 임하셔서 그것을 소유하시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가 그의 성령으로 우리의 영에게 역사하셔서 우리의 몸으로 부활 시에 있는

구속에 참여하게 하는것은 물론이요 이미 이 땅에서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어서

영혼을 거룩하게하는 역사가 더욱 영광스럽게 진행될 것입니다.

몸을 포함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 
거기에 참여하는 정도만큼 그 역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그리스도의 진정한 피"를 의도적으로 먹고 마십니다.

루터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 떡속에 있기 때문에 
불신자가 그 떡을 먹어도 결국 거룩한 몸을 먹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떡을 먹음으로써 믿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방식으로 
정말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거룩한 몸과 피의 능력을 양식과 음료로 받아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영혼과 육체가 영생에 참여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찬에 대해서 말씀한 모든 내용이 
"예수의 피를 마시는 일"에 충만히 적용됩니다.

그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과연 지극히 친말하고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발효되는 
그러한 깊고 깊은 영적 신비인 것입니다.


영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의 연합을 충만히 누리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실 때에 드러내 보이신 바로 그 기질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자가 될때에 그것이 바로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피는 몸에 생명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기를 바라면 
거기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초인간적인 강력한 방식으로 그 피가 하늘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강건케 할 것입니다.

피 속에서 부으바 된 생명이 그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생명이 죽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일이 어떻게 해서 주님의 하늘의 생명에 고귀하게 
참여하는 것이 되는자를 깨닫는 데서 
믿음의 가장 고상하고 영광된 기능이 있는것입니다.

앤드류머레이 목사님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십자가의 보혈+오순절의  충만한 축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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