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갈 길을 마치고

2014. 1. 8. 23:08성경 이야기

디모데후서 4:1-8                                           

 

 

디모데서는 옥중서신이요 목회서신입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이 자신을 대신해서 에베소 교회를 돌보는 사역을 맡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달려갈 길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때가 가까웠음을 느낀 사도 바울이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남긴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권면의 말씀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디모데서 전체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이고, 이처럼 맡은 일에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013년도에 드리는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연말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연습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평가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라고 사도 바울처럼 승리의 고백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권면은 “말씀을 전파하라”(2)는 겁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2)하십니다. 또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5)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차적인 사명이 바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도 바울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3,4)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 즉,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허탄하고 거짓된 교훈을 좇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는 말씀이 영어 성경에는 “a great number of teachers to say what their itching ears want to hear”(NIV)라고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자신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줄(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을 많이 둔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할 바른 교훈이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선생들을 좇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이 시대가 그렇습니다. ‘종말과 회개와 심판’에 대해서 설교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를 믿으면 삼박자축복을 받고, 만사형통한다, 이렇게 설교해야 좋아합니다.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설교자가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설교자를 좋아합니다. 종말의 징조입니다.

 

 

4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하셨습니다. ‘허탄한 이야기’에 해당되는 헬라어 ‘뮈두스’는 ‘신화(myths)’라는 뜻입니다. ‘신화’는 근거가 희박한 만들어낸 이야깁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꾸며낸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신화는 ‘뉴에이지 사상’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 사상은 사탄 마귀가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도 이 뉴에이지 사상이 들어와 기독교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긍정의 힘, 4차원의 영적 세계와 같은 뉴에이지 사상에 영향을 받은 책들이 교회 안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알파코스, 뜨레스디아스, 관상기도와 같이 뉴에이지에 영향을 받은 영성 프로그램들이 기독교를 뉴에이지의 기독교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그 믿음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듣고 싶은 말이나, 허탄한 신화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그 믿음이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2.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6)하십니다.

 

 

민수기 15장에 등장하는(민 15:1-10) 관제(drink offering)는 제단에 올려진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6)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예견하고 드린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못이 박혀 죽은 베드로와는 달리 로마의 시민권자였던 사도 바울은 참수형으로 피를 뿌리고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자신이 당하게 될 순교의 죽음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관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죽음까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관제가 되길 소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그의 삶과 또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 헌신된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는 순간부터 철저히 헌신된 삶을 살았고, 또 헌신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름지기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들이라면 사도 바울처럼 그렇게 살고 또 그렇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3. 7절과 8절의 말씀은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의 회고록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생애를 마치셨던 예수님처럼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도 승리의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승리의 고백입니다.

 

 

a. 먼저 “선한 싸움 싸웠다”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을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군사인 것입니다. 먼저는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멸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선한 싸움’인 것이고, 또 그 방법도 선해야 하기에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b. 둘째 “달려갈 길을 마쳤다”하십니다. 신앙생활은 달음박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경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달려가야 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장거리 경주이기에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자가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 천국과 영생의 선물을 얻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약속하신 것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c. 셋째 “믿음을 지켰다”하십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에는 먼저 규칙을 지켰다는 뜻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5절에서도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하셨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믿음생활해도 법대로 즉,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법대로 해야 합니다.

 

 

또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에는 ‘충성했다’ 혹은 ‘신실했다(faithful)’는 뜻이 있습니다.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하듯이, 청지기가 직분을 맡긴 주인에게 신실하듯이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올 한해 내게 맡겨주신 직분과 달란트에 충성했는지 우리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예수님께 충성했습니다. 100%가 아니라, 120%로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켰다”는 담대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꾼은 하나님의 법대로 일해야 하고, 또 직분을 맡긴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고 신실해야 합니다.

 

 

4.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8)하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쓰라 하십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주신 사명에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의의 면류관’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주경가들은 이 ‘의의 면류관’을 성도들이 얻게 될 궁극적인 구원, ‘영생’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의롭다하시는 면류관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의롭다 하시는 면류관’ 즉 궁극적인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8절에서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하십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즉,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모든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 곧 영생과 부활의 선물을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의의 면류관’을 쓰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전에/에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