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의 깊은 곳에서의 십자가 경험 -데이빗 윌커슨 목사

2015. 1. 22. 13:36성경이야기2



    내용이 좀 길지만 너무 귀한 간증이라 퍼왔습니다.

데이빗월커슨 목사님의 간증이 바로 사도 바울이 외쳤던 롬 7장과 8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롬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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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의 깊은 곳에서의 십자가 경험 -데이빗 윌커슨 목사



저의 '무'의 경지에서 저의 의지를 포기했을때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가 

가장 강하게 경험된 자리입니다.

저는 투쟁과 노력을 중단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분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그 문제는 이제 완전히 저의 손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맡으셔야 합니다.

그분의 영이 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저를 취하셔서 새사람으로 다시 만드셔야 합니다.

저는 육의 독립된 삶으로 인도하려는 혼을 포기했습니다.

죽음 그것은 옛언약에서 나와 새언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육적인 믿음은 죽어 없어져야 합니다.


믿기 위해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은 죄에 진저리가 났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거룩한 삶을 살며 육의 습관적인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사모하십니까?

그러면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십자가를 붙들 준비를 하십시오.

옛언약은 당신을 '무'로 즉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그 상태로 데리고 올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인간적인 힘과 뜻에 의해 죄를 이기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할 때

새언약을 통한 자유로운 영광된 영역에 입문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것을 순종해야할 짐이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이전 장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들의 본분을 지키기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성령님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을 규정합니다.

새언약을 만드실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모든조건과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과 힘을 공급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맹세로 "내가 하겠다"라 말씀하실 때 우리의 믿음은
"그렇게 되게 하십시오"라고 응답합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새언약의 다른 멋진 진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결코 충분히 가까이 갈 수 없는것과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께서 원하시는 만큼 가까이 오게 할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속력있는 이 계약서로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에게 우리를 가까이 결합시키시고 
묶으시고 적용시키시고 또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그처럼 하십니다.
새언약은 모두 그분의 자녀들을 타락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우리안에 사시는 성령님에 의해 죄의 힘과 통제권이 꺾어질수 있고 또 꺽어질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진리는 끊지못하는 죄와 투쟁함으로 낙심한 신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에게 드러난 새언약을 지니는 것만이 우리가 죄로부터 온전히 승리를 취하는 
비밀을 배울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뜻을 제게 밝히신 것은 제가 '무'의 깊은 곳 아래에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새언약을 사모했습니다.전례없이 타락한 이 마지막때에 새언약이

 죄에 속박된 교회들을 해방할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로 입증될것을 믿으며 말입니다.

저는 이주제에 대해 제가 찾을수 있는 책들을 다 읽으며 이 진리를 열심히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다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애매했습니다.
저는 제삶에서 새언약의 힘을 보고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만약 새언약이 진정 죄의 권세를 제어하는 능력의 비밀이라면 
그것은 제마음을 깨끗케 하기 위한 투쟁에 실제로 작용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만약 새언약이 제삶에 작용하지 않으면 결코 다른사람들에게 전할수 없으며 
또 새언약은 단지 죽은 글자뿐일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그래서 저는 저의 삶과 목회를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시는 진리를 시험하며 확증하는 일종의 영적실험실로 드렸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에게 말할수 있습니다.그분께서 저에게 드러내신 새언약은 여태껏 
제가 알고 있는 경험중 가장 중요한 생명을 주는 것이며 죄를 폐하는 진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진리를 제게 여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날부터 몇년동안 저는 
"주님 언제 그것의 뜻을 제게 여시겠습니까?라고 기도해왔습니다.
그분은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체험해야 한다.

네가 새언약의 교리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네가 십자가를 지는것과 자신의 모든것을 
죽이는 그 과정을 거친후에만 주어질것이다."

저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그 깊은 단계로 내려가기 전에는 새 언약을 진정

이해할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지식을 상세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젊은시절 목사로 사역하기 시작한 후 줄곧 저는 생생하게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저는 베드로의 부인과 골수를 찌른 가시면류관과 조롱하는 자들과 폭도들의 힐책하는 
외침들과 그분의 손을 찌르는 못들과 그분 옆구리를 찌른 칼을 당하셨을때 
예수님께서 느끼신 그 비애를 성실히 진술했습니다.

저는 유다의 입맞춤으로부터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던 마지막 외침까지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그 갈보리의 장면의 비통함을 포함하여 세세한 사실들은 십자가의 가장 깊은 뜻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갈보리의 사건에 관해서만 압니다.

그러나 소수만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진정한 영적인 뜻과 그것을 
우리의 개인적인 십자가로 삼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이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무리가 따랐습니다.
한번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무리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지금까지 게속 들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37-42)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이번에는 바울이 선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여기에 어쩔수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즉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그분을 따를수 없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서는 그분의 자녀가 될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의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새언약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뜻을 모르면 어떻게 십자가를 지며 그것을 붙들며 그것에 복종할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십자가의 정의를 들었습니까?
수년동안 결코 십자가가 그것에 대한 저의 깊은 갈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저에게 보여지지 않았다고 저는 솔직히 시인합니다.

저는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하게 전할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그것은 제게 하나의 신비로 남았습니다.
저는 절망적으로 주님께 도전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갈망하고 
기꺼워하는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그러나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이 저의 십자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제가 십자가에 못박혀야만하고 죽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어떻게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십자가를 붙들라고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제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그 새언약의 지식을 가질수 있습니까?"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당신은 십자가의 뜻과 자신의 십자가 자신을 부인함의 의미를 이해합니까?

당신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가 무슨뜻인지 또 그것의 결과가 어떠한지 
제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제가 들은 가장 흔한 설명은 이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떤 혼란시키는 요소,어떤 종류의 고통수러운 멍에,예를 들어 만성병이나 
육의 가시같은 어떤 무거운 짐이라는 말입니다.그러나 그정의는 원래 의미의 
근처에도 못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단순히 어떤종류의 
육적인 방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모든것보다 훨씬 더깊고 어두운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녀의 십자가는 사악하고 욕하는 남편이야"또는 
"그는 이십년동안 고통을 겪지 않은 날이 없었어.이것이 그의 십자가야"라고 
말하는것을 들었습니다.아닙니다.십자가는 이러한 모든 것보다 훨씬 더한것입니다.

저는 교리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십자가에 대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그십자가에 대해 당신과 나눌것입니다.
제가 이제 나눌것은 많은이들에게 이해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자유로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해 할것입니다.

저의 십자가의 경험이 여기있습니다.저는 "무로 향해 내려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지금 사전에서 '무'를 어떻게 말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것은 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밑으로 밑으로 완전히 어떻게 할수도 없이 내려간 곳입니다.
저는 진정 거룩하고 깨끗하기 위해 애쓰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오랫동안 많은 투쟁을 했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모든 정열과 저의 몸과 마음을 육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저는 승리자의 삶을 살고자 열쇠와 통찰력과 비밀을 찾으며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수많은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마를때까지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걸으면서도 기도했고 무릎꿇고도 기도했으며 엎드려 누워서도 기도했습니다.
저는 주님께 기쁨이 되기를 몹시 원했습니다.
저는 눈이 피곤해 질때까지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저의 죄를 범하게 하는 오른팔을 찍어버리시며 
죄를 범하게하는 오른쪽 눈을 빼어 버리시고 무엇을 하시든 
저의 모든 지속되는 죄를 끊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던중 어느날 저는 더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기도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제가 오직 할수 있었던 것은 눈물도 다 메마른 공허한 심령으로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느낌이 몰아친 상태에서 저는 오직 "주님 저는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저는 지쳤습니다.저는 노력했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책을 통한 저의 모든 추구와 모든공부와 정복자가 되기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육신과 투쟁하고 있습니다.저의 시험들은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산제물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저를 인도하시고 능력주시도록 부지런히 성령안에서 살고 
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저는 '무'로 내려갔습니다."주님 저는 더이상 투쟁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바쳐드릴것이라곤 제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치도 없고 핑계도 없고 더이상 힘도 없고 더 싸울수도 없습니다.
저는 약하고 무력합니다.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자에 대하서도 무지합니다."라는 
외침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세상에서 어떤 상담자도 어떤 사랑하는 이도 어떤친구도 목사도 
아무도 여러분을 도울 수없는 그 '무'로 내려가십시오.
그곳은 주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시고 또 길을 보여주시고 
당신을 변화시키시지 않고는 갈수 없습니다
.

그곳은 당신이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아는 바로 그장소입니다.

그곳은 결국 당신의 육안에서의 모든 투쟁과 노력은 당신을 
아무곳에도 이르게 하지 못했고 그리고 이젠 그분께 모든것이 달려 있다는 
진리를 직면하는 곳입니다.

만약 계시가 있다면 그분께서 그것을 주셔야 합니다.
만약 제 삶중에서 고쳐야 할것이 있으면 그분께서 하셔야 합니다.
만약 제가 그분께 복과 기쁨이 되려면 그분께서 그렇게 되게 하셔야 합니다.

만약 제가 성령안에서 행하려면 그분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셔야 합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육욕이나 열정을 없애기 위해서 제게 힘주신다면 
그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일어납니다.

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에서 그분의 초자연적인 힘 능력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저의 약속들은 그중 어떤것도 지키지 못할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일하는데 아무런관계가 없기에 저의 노력은 헛된 것입니다.

제가 자신의 의지를 더이상 갖지않고 그 '무'의 장소로 내려갑니다.
제 자신은 무력하고 의지도 없습니다.저는 저의 의지가 제안에 어떠한 영성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그분 홀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예수님을 상기시키는 
굳건한 기초에 저자신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처한 '무'에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오는 하나님이시지만 아버지의 인도가 필요하셨습니다.
주님은 홀로 아무것도 하실수 없었습니다.주님이 어떻게 저로부터 그이하의 것을 
기대하실수 있겠습니까? 만약 주께서 매 걸음마다 도움과 인도하심이 필요하셨다면 
저의 모든 일에 주의 인도가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버지로부터 동일한 사랑과 인도하심이 없다면 얼마나 더 무력합니까?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님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자신이 하시는 모든것을' 주께 보이셨습니다.

"제가 만약 그리스도 안에있고 또 그분의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라면 저 역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그리고 그분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저를 통하려 하시고자 하는 
모든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후에 내가 그인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아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8-29)

'무'의 장소는 당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곳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또 그분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지만 
당신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분께서 침묵하신다고 느낄것입니다.
그분의 계시가 당신께 오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겪고 있는 것의 더 분명한 통찰력을 얻기 위한 마음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이런시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부르짖으셨습니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15:34)

저는 그와 똑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원하는 전부는 아버지 뜻대로 하는것이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왜 혼자라는 감정을 지녀야만 할까요?아버지는 왜 제가 절망할 때에 응답하지 않으세요?
왜 저의 영혼은 거부와 혼란스런 느낌으로 절망하고 있나요?" 

예수님께서"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뜻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은 죽음으로 향한 똑같은 길로 내려갈 것이다." 
십자가의 경험은 하나님께서 의와 거룩함을 구하는 당신의 부르짖음을 못들으셨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한동안 당신의 기도가 응답되지않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일어나 논리적으로 따집니다.
"내가 원하는 전부는 승리의 삶을 살며 그분께 하나의 즐거움이 되며 
멋진 친교를 즐기며 예수님처럼 되는것이었습니다.하지만 이건 뭐예요? 

왜 분명한 길과 재확신이 없죠? 왜 이러한 어두움이 저의 영혼안에 있죠? 
예를 들어 하나님의 귀에 말씀드리지만 들으신것같지 않은 이느낌 말입니다.
왜그렇게 복잡하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그 시점에서 마귀의 어두움을 깨뜨리시며 
믿음으로 크게 외치셨습니다."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23:46) 

이곳이 십자가가 가장 강하게 경험된 자리입니다.
저의 '무'의 경지에서 저의 의지를 포기했을때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투쟁과 노력을 중단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분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그 문제는 이제 완전히 저의 손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맡으셔야 합니다.
그분의 영이 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저를 취하셔서 새사람으로 다시 만드셔야 합니다.
저는 육의 독립된 삶으로 인도하려는 혼을 포가했습니다.

모든 야망에 죽었습니다.자랑하는 것과 다른사람을 감동시키는것에 죽었습니다.
저의 힘만으로 하려는 어떤것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나의 계획들 갈망들 또 저의 뜻에 대해 죽었습니다.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저의 모든 노력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과거의 육적인 믿음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수없이 믿음에 집중하기 위하여 투쟁했으며 약속들로 그것을 부풀리려 애썼습니다.
저는 재차 반복했습니다."주님 믿습니다.믿고 있습니다.정말 믿습니다.
정말로 진실로 정직하게 맏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육적인 요구를 말할수 있습니다.최후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역사하실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드립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시간표대로 행하지 않으실때 우리의 믿음은 소위 흉칙한 불신앙으로 바뀝니다) 

죽음 그것은 옛언약에서 나와 새언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육적인 믿음은 죽어 없어져야 합니다.
믿기위해 더이상 투쟁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믿음을 가진다면 그분께서 진실한 믿음 
즉 그리스도의 믿음을 제게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일정량의 믿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자신이 아무것도 할수 없는것이 사실이면 이것은 그분의 믿음을 포함합니다. 

바로 성경이 '그리스도의 믿음'이라 일컬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죄에 진저리가 났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거룩한 삶을 살며 육의 습관적인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사모하십니까?

그러면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십자가를 붙들 준비를 하십시오.
옛언약은 당신을 '무'로 즉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그상태로 데리고 올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인간적인 힘과 뜻에 의해 죄를 이기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할때 
새언약을 통한 자유로운 영광된 영역에 입문할 준비가 되는것입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롬7:9-13)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새 언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