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 때에 도피처가 필요하다면 몽골이나 남미가 아니라

2015. 8. 23. 22:06성경 이야기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믿는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한국교회는 성경의 예언들 특별히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들이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6장으로부터 전개되는 7년 대환난의 사건은 철저히 이스라엘과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고, 11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1260일 동안 예언 사역을 하는 두 증인이 등장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12장에는 만국을 다스릴 아이(그리스도)를 낳은 여자인 이스라엘(이를 교회로 해석한다면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지게 된다.)이 7년 대환난의 후반부인 1,260일 동안 하늘부터 떨어진 용으로부터 환난을 겪게 될 것인데, 이 환난의 와중에 하나님이 저들을 광야로 이끌어 기적적으로 지켜주실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 계시록 16장에는 7년 대환난의 마지막 순간 적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큰 전쟁을 벌이기 위해 군사를 집결하는 곳도 바로 이스라엘 땅인 아마겟돈(계 16:16)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들을 우리가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각각의 의미가 무엇인지 영원토록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성경의 예언들을 해석할 때 철저히 문자적 해석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요한계시록 12장에는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야곱의 환난’으로 일컬어지는 1260일의 환난을 겪게 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특별한 도피처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광야’(계 12:6)이다. 감람산 강화에서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하셨다(마 24:16). 미가서 2장 12절(참고 이사야 61:1)에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하리라 는 말씀이 등장한다.

‘양의 우리(Sheepfold)’라는 뜻을 가진 보스라는 본래 에돔 ‘광야’에 세워졌던 도시로 여러 개의 ‘산들’로 둘러쌓인 지금의 요르단 지역에 있는 유적지 ‘페트라’ 지역을 의미하는 옛 명칭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종말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성전에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세워지는 것을 볼 때 유대인들에게 피하라 하신 ‘산’(마 24:16)과 ‘광야’(계 12:6)가 바로 에돔 광야에 위치한 페트라 지역이라고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에서 본격적인 적그리스도의 핍박이 시작될 때 예수님이 피하라 하신 산과 광야는 막연한 장소가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산으로 둘러쌓인 에돔 광야의 페트라(보스라) 지역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는 주장을 하며 환난의 때에 피할 도피처를 예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몽골과 남미의 땅이 아니라, 에돔 광야의 보스라(페트라) 지역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환난날의 도피처라는 것이다.

  

환난전휴거를 믿는 필자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성도들의 도피처는 ‘하늘의 처소’ 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에돔 광야 보스라는 7년 대환난 동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다가 핍박을 받게 될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하신 도피처인 것이다.

  

그럼에도 환난전휴거를 믿지 못하고 굳이 이 땅에서 환난중에 피할 도피처를 찾는 분들이 있다면 몽골과 남미가 아니라 이스라엘로 가길 권한다.   적어도 7년 대환난의 전반부에는 이스라엘 땅에는 하나님의 재앙도 적그리스도의 핍박도 없을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본격적인 핍박을 가할 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산)로 피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과정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많은 잡족(이방인)들이 애굽을 빠져나왔다.  출 12:38)

  

여하튼 하나님이 약속하신 도피처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도피처를 만들어 환난을 피해보겠다는 시도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치 못한 생각이다.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 사람들은 “다시는 물로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창 9:11)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바벨탑을 높이 쌓아 홍수의 심판이 올 때 피할 도피처를 만들려고 했다.   이런 시도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예레미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