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왜 마지막 때인가 …

2013. 6. 7. 11:48성경 이야기

지금이 왜 마지막 때인가 …

 

지진과 기근과 질병과 전쟁, 이상기후,화산폭발 등등

이 모든 것은 아주 옛날부터 계속 있어왔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였으며  

많은 피해를 가져다 주었었고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재난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악함 때문에 지금을 마지막 때라 말하는가? 

 

글쎄.... 

 

아담의 첫째 아들은 예배문제로 동생을 돌로 쳐 죽였다. 

죄인들에 대하여 십자가 형벌과 단두대, 교수형, 화형,  

사지를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

곤장과 같은 태형과 돌로 쳐서 죽이는 등....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처벌이 이루어졌었다.

그렇다면 성적인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보라...

율법의 내용을 보더라도 예전의 성적인 타락은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도 전쟁은 늘 있어왔고....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말하는 것인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장 6절~8절)

 

주님은 마지막 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막 13장 7절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눅 21장 9절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내가 처음 TV 를 접한 것은 40년 전이다.

그것도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흑백 TV였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저녁만 되면 TV가 있는 집에 모여

신기해 하며 시청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전에는 어떠했을까...

또한 전화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떻했을까.... 

 

옆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멀리 있는 다른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월이 흘러 역사로만 알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은 아프리카 구석과 밀림과  

저 멀리 북극과 남극에서의 일까지도 

실시간 인터넷을 통하여 소식을 듣고 보고 알 수 있는

난리와 소요와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모든 재난을 다 보고 듣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대를 

마지막 때라는 것을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의 예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난리의 소문을 듣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홍수처럼 쏟아지는 방송과 책과 수많은 교회들에서  

넘쳐나는 말씀들과 미디어를 통한 수많은 정보들.... 

 

이것으로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필요한 것들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난 오늘 몇가지 그림들로 설명해야 할 내용이 있다. 

 

주님은 감사하게도 말씀을 비춰주실 때에 

이러한 시청각 자료도 제공해 주심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을 통한  

자극과 정보, 관계, 경험,지식을 통하여 

말과 행동, 표정, 태도들을 결정하고 나타낸다. 

 

그런데 성경은 이 과정에서  

한가지 단계를 더 거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장 34절)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마 15장 18절)

 

즉 마음의 단계인 것이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자극에 대한 반응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이제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1, 마음의 좁고 넓음.

 

 

마음이 좁으면 모든 자극에 대하여 매우 급한 반응이 나타난다. 

 

자극이 눈과 귀와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관계를 통하여

내 안에 들어 왔다가 마음을 거치는 시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정제되거나 순화되지 않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미숙한 상태에서의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로 화를 내거나 격한 말을 하게 된다.

 

마음이 넓으면 모든 자극에 대하여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 때에 나타나는 반응은 너그러움과 이해이다. 

 

2, 마음의 연약함과 건강함. 

 

마음이 연약하면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낙심과 근심과 상심, 걱정, 두려움, 불평, 좌절등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데

마음이 연약한 상태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하여 자기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늘 자신을 괴롭히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상황으로 자신을 이끌어간다. 

 

마음이 건강하면 외부의 어떤 자극에 대하여도 흔들림이 없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평안과 담대함이다. 

 

3, 마음의 얕고 깊음. 

 

마음이 얕으면 마음이 단단하고 울퉁불퉁하여

외부의 모든 자극에 대한 반응이 매우 날카롭다. 

늘 예민하고 무례하며 질투와 시기와 원망이 가득하다. 

 

마음이 얕은 상태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모든 것들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마음이 깊으면 외부의 어떤 자극에 대하여도 요동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음안에서 그 자극을 다스림으로써

그에 대한 반응은 늘 따뜻하고 온유하다. 

 

왜 이렇게 마음에 대하여 알아 보았느냐 하면 

오늘 본문을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 1장 21절)

 

마음에 심어진 말씀....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 

 

영혼을 능히 구원할수 있는 말씀이

마음에 심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점검하여 본 적이 있는가?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가?

과연 영혼을 구원할 말씀을 심을 만한 마음인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가?

 

넓고 건강하고 깊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과 

좁고 연약하고 얕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의 결과가 어떠할까? 

그래서 주님은 비유를 통하여 마음에 대한 말씀을 여러번 하셨던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ㅇ다. 

 

이제 알겠는가? 

왜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그림으로까지 설명하였는지를.... 

 

지금은 정말 마지막 때이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지식으로  

우리의 머리를 키워왔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열매 맺지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내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맺지 못할 수도 있다.

 

일년 전이나 십년 전이나

수십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 믿음....

여전히 변함이 없는 삶.... 

 

이것이 마음의 문제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의 마음을 어찌할 것인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지금은 지식을 쌓을 때가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할 때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한다.

어찌하여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 이유를 들어 정당화 하지 말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서 1장 26절)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 

화를 내고 분을 품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며 

누군가를 향하여 눈을 흘기고 다투며 원망하면서 

이유를 찾아내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든 악한 행동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이 악한 것을 속이고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는 것은

그의 모든 경건한 모양의 삶도 거짓이라는 증거다.

 

마음의 새롭게 함은 

자기 마음의 악함을,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이며 

주님 앞에 이 마음을 회개하는 것에서 출발되어 진다.

 

하나님은 중심을 살피시며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다.

 

마음의 악함을 변명하지 말고 

마음의 악함을 정당화 하지 말라.

 

이것이 자기 부인이고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죽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체계와 행동들....

그 어느것도 옳거나 선하지 않음을....

 

철저히 자신의 옳지 않음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는 것, 

이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5절)

 

누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하여서 마음이 치유되고 건강해지겠는가!

노력도 방법도 한계가 있다. 

 

주님의 마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이 마음을 주님께 구하라.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여야 한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주님의 마음을 얻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얼마만큼 원했었는가...

진심으로... 진정으로... 

 

주님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눈물로 통곡으로 기도를 했었는가? 

 

예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얻고자 얼마나 간구하였는가 말이다. 

이 마지막 때에 찾아야 할 것을 찾자.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여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며 

새로워진 마음에 심어진 말씀으로 좋은 열매를 맺어 

심판하시고 추수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 열매를 내어 드려야 한다. 

 

새롭게 된 증거가 무엇일까... 

주님의 마음을 품은 증거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태복음 11장 29절)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새롭게 되었다면

우리는 모든 자극에 대하여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반응하게 될 것이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온유함과 겸손함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마지막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도록 처절하게 몸부림 쳐야 한다. 

 

말씀의 중심 계명은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에 따르는 모든 실천적 요소와 규범과 방법이 

성경의 구절구절에 흠뻑 녹아있다. 

 

말씀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것이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 심어진 말씀.....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 심어진 말씀.....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최상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출처 : 주님 다시 오십니다. / 신부 

          주님오시는 발자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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