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개혁을 위하여 …

2013. 12. 31. 23:30성경 이야기

진정한 기독교 개혁을 위하여 …

 

 

 

초겨울 저녁즘에 길을 가다보면  

어디선가 구수한 빵냄새가 풍겨옵니다.  

다름아닌 붕어빵 굽는 냄새입니다.  

노릇노릇 갓 구워낸 붕어빵은 겨울에 별미입니다.  

 

붕어빵을 만들려면 반드시 붕어빵 틀에  

반드시 반죽을 부어야만이 붕어빵이 나옵니다.  

 

천번 만번 수없이 만들어도  

붕어빵 틀에서는 다른것을 만들 수 없고  

오직 붕어빵만이 나옵니다.  

이유는 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틀이라는 것은 형태를 똑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틀을 벗어나면 똑같이 만들 수 없습니다.  

틀을 벗어나면 불량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틀을 벗어난 불량품이 기독교 안에도 많습니다.  

너무 많다보니 진품이 불량품 취급을 받고  

불량품일수록 진품 취급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또는 대대로  

이런 불량한 것들에 절대다수가 속아왔고 지금도 속고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이글을 쓰는 저 역시 제 자신의 육신의 욕망과  

진리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음으로  

수많은 세월 불량한 것에 속아 왔으니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진리를 알고  

돌아왔으니 그져 감사할 따름입니다.  

 

불행 중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기독교의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로  

또한 마지막 때를 알리는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많은 목사와 전도사 등 수많은 분들이  

교회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혁의 부르짖음이  

비단 요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와 중세에도  

현대에서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있어왔습니다.  

 

이제는 누구라도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압니다.  

특히 요즘 이러한 개혁의 부르짖음이 너무 많이 들리다보니  

신선하게 들리기보다 오히려 식상하게 들립니다.  

 

왜일까요?  

무엇이 개혁의 발목을 잡았을까요?  

답은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KJV흠정역) 이사야 5:1  

"이제 나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되  

그의 포도원에 관해 내가 사랑하는 자에 대한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는데  

열매를 풍성히 내는 작은 산에 있도다."  

 

(KJV흠정역) 이사야 5:2  

"그가 거기에 울타리를 두르고 그것의 돌을 주워내고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거기에 심고 그것의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또 그 안에 포도즙 틀을 만들었도다.  

포도원이 포도 내기를 그가 바랐는데 그것이 들포도를 내었도다."

 

개혁하려는 의지와 마음과 생각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위의 이사야 5장의 본문처럼  

하나님은 밭을 새롭게하신 후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바라셨습니다.  

 

개혁을 위해 정결케 하고 최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이런 기가막힌 일은 구약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교회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KJV흠정역) 요한복음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KJV흠정역) 요한복음 15:2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개혁을 원합니까?  

그러면 반드시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로 개혁을 부르짖고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 멋진 설교를 하고 들어도  

예수님 안에 붙어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의 진액만을 받아먹을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의 말씀만이  

우리 삶의 기본적인 바탕과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는 자로 남을 것입니다.  

 

요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내삶의 중심에 있서야  

아름다운 열매맺는 개혁적인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이제 쓸데없는 탁상공론들을 그만 그쳐야 합니다.  

 

기분 나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의 정의를 부르짖고,  

온갖 문제점들과 좋은 말을 다하여도  

내 자신의 심령이 온전히 거듭나지 못하고  

내 삶이 온전히 거듭나지 못했는데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개혁을 위한 외침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개혁은 외침 이전에 각자 성경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  

사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  

그들의 삶을 보며 그들의 믿음의 삶에 우리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은사와 기적이  

우리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은사와 기적으로 개혁도 할 수 없습니다.  

개혁을 세상방식으로 하려고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떠나고 말씀을 떠나고  

성령님의 역사를 떠난 개혁의 부르짖음과 개혁운동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옛날 재밌는 광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개혁을 하는 사람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는  

묵묵히 자신과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며  

조용히 개혁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스스로 어떠한 일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요 5:19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분께서 무슨 일들을 하시든지 이것들을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요 8: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나아왔기 때문이라.  

나는 스스로 오지 아니하였으며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  

 

예수님의 모든 삶은 개혁 그 자체의 삶이셨으나  

그분의 개혁적인 삶의 자신의 뜻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일점일획도 거스림이 없는 삶이셨습니다.  

 

여러가지 말이 필요없이  

개혁은 모든 삶의 가치와 기준을 하나님 말씀에 맞추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개혁은 조용히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되면 당연히 외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KJV흠정역) 디모데후서 1: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들고..."  

 

(KJV흠정역) 디모데후서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겨진 그 선한 것을 지키라."  

 

개혁은 디모데후서의 말씀과 같이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전한 책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은 우리의 영혼을 바로 세워주는 틀입니다.  

 

붕어빵 틀에 들어가면 반드시 붕어빵이 나오듯이  

하나님 말씀의 틀에 온전히 들어가면  

하나님 닮아갈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밖에 없고,  

성령님의 인도함 받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틀에 들어가는 것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단순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랑에 감복하여 당신 스스로 말씀의 틀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진리를 갖추지도 못하고  

편협된 지식과 열정만 가지고 개혁을 부르짖는 분들이 있고  

그런 단체와 신학자,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런 곳일수록 시끄럽습니다.  

 

말씀의 틀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의 틀에 들어감은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붕어빵 틀 속에 반죽을 넣는다고 금방 붕어빵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에 의해 달궈진 틀속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누릇누릇하고 먹음직한 붕어빵이 나오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틀속에 들어가  

말씀으로 인해 오는 온갖 고난의 불과 같은  

크고 작은 연단을 거쳐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입니다.  

만일 마음과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부족하다면  

개혁이란 단어를 일단 내려놓고  

먼저 자신의 내면의 개혁부터 이뤄가시기를 바랍니다.  

 

붕어빵 틀에서 붕어빵만 나오는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말씀의 틀로 들어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나오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KJV흠정역) 디모데후서 1: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들고"  

 

(KJV흠정역) 디모데후서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겨진 그 선한 것을 지키라."

 

 

 출처; 주님오시는 발자국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