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7교회

2014. 1. 11. 22:39성경 이야기

요한계시록 2장 1-11절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소개된 아시아의 7교회는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쓰고 있을 당시 존재하고 있던 지역교회(local)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이런 지역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여 진 글입니다. 물론 사도요한이 이 글을 쓸 당시 아시아에 이 7교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일곱 교회를 선택하여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로 명시한 것은 이 교회들이 가진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7교회는 무엇을 대표하고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아시아의 7교회가 교회의 역사 속에 등장할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상징하고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살필 때,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말씀들은 일차적으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7교회(local churches)가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주신 말씀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역사 속에 등장할 모든 교회들에게 주신 권면이요, 책망이요, 칭찬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종말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7교회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다가 휴거 사건으로 지상에서 사라질 모든 교회들을 대표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구체적으로 7교회 한 교회 한 교회들이 대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7교회를 시대마다 등장할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견해와, 7교회 모두가 모든 시대에 등장할 교회들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는 해석으로 나눠지고 있습니다.

 

7교회를 시대마다 등장할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에베소, 서머나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교회는 중세 교회를,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의 때에 나타날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계시록 2,3장에 소개된 교회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이런 의견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계시록 2,3장에 소개된 교회들의 개략적인 특징과, 또 이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들, 특별히 모든 교회에 주신 반복적인 말씀들(pattern)을 살피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에베소 교회입니다(계 2:1-7).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2:4).

 

2. 서머나 교회입니다(계 2:8-11). 목숨을 걸고 모진 핍박을 견뎌내야 했던 교회입니다(2:10).

 

3. 버가모 교회입니다(계 2:12-17). 회개를 요구받은 교회입니다(2:16).

 

4. 두아디라 교회입니다(계 2:18-29).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입니다(2:20).

 

5. 사데 교회입니다(계 3:1-6). 잠자는 교회, 죽은 교회입니다(3:2).

 

6.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계 3:7-13). 인내하는 믿음으로 시험의 때를 면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교회입니다(3:10).

 

7.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계 3:14-22).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교회입니다(3:16).

 

이렇듯 각기 특징을 가진 7교회에 개별적인 서신을 보내면서, 몇 가지 반복되는 형식(pattern)이 등장합니다.

 

먼저, 편지의 발신자인 예수님에 대한 소개가 등장합니다(1,8).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계시는 7교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고난당하는 교회를 향해선 위로하시는 분으로(8),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교회를 향해선 심판의 주로(18), 자기를 계시하십니다. 2,3장에서 교회들마다 등장하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의 말씀들은, 1장에서 계시된 예수님의 모습들(계 1:8-18절)이 반복된 것입니다. 반복되고 있지만, 각 교회의 특성과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주님을 위로자의 모습으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심판자의 모습으로 맞이할 것인가? 그 결정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 “내가 안다(I know)”는 말씀의 반복입니다(2,9).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2:2)하십니다. “네 환란과 궁핍을 안다”(2:9)하십니다. 교회들마다 겪고 있는 고통과 수고와 인내와 환란을 아신다는 겁니다. 저들이 남모르게 행한 선행도 아신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렇듯 자랑할만한 행위들 뿐 아니라,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도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일’(2:20)과, ‘발람의 교훈을 쫓은 일’(2:14), ‘더웁지도 차지도 않은 행위’(3:15)도 아신다는 겁니다.

 

“내가 안다”는 이 말씀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자들에겐 위로의 말씀이 될 수 있지만,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회개치 않는 자들에겐 무서운 경고와 심판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고 계십니다.

 

세 번째,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하십니다(7,11).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들어야 내 상태를 알 수 있고, 들어야 준비할 수 있고, 들어야 회개할 수 있고, 들어야 환란을 피할 수 있고, 들어야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종말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고, 이렇게 듣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1:3).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도 종종 설교가 끝난 뒤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23, 마 1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무리 지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주셔도 듣지 않는 자에게는 그 말씀이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을 주셨지만, 오늘날 교회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겐 성령을 통해 말씀을 주신다는 겁니다. 이처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해서 이것이 또 다른 ‘계시’의 말씀이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의 ‘계시’사역은 요한계시록으로 끝난 것입니다. 교회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말씀은 이미 계시 된 말씀들을 이해하도록 도우시는 ‘조명의 사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말씀을 상고할 때, 그 때 그 때마다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종말에 대한 ‘계시의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부족하기에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예언의 말씀들을 깨닫게 해달라고, ‘성령의 조명하시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들을 향해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들어야 깨닫고 준비하여 환란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7, 11).

 

7교회에 주시는 말씀 속에는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상급과 축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하십니다. 각 교회들에게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과 축복을 소개하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교회 시대를 사는 성도들 모두가 ‘영적싸움’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교회의 시대가 비록 성경이 약속한 ‘은혜의 시대’이긴 하지만, 믿음을 지키고,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의 시대’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나라를 심판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승리합시다. 이기는 자가 구원과 상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7교회를 연대기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빌라델비아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마지막 때에 등장할 교회의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7교회에 주신 말씀들 가운데는 칭찬과 함께 책망의 말씀들이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 가운데는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었던 교회도 있었고, 책망 없는 칭찬 또는 칭찬 없는 책망만 들었던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 없는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유일하게 칭찬 없이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 두 교회가 마지막 때에 등장할 교회의 모습이라면 마지막 때에는 교회들이 칭찬받는 교회와 책망받는 교회로 나뉘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교회 안에서(혹은 교회 가운데서) 먼저, 가라지와 알곡, 양과 염소를 나누는 심판을 행하신다는 겁니다.

 

과연 나의 믿음이 혹은 우리가 몸담은 교회의 믿음이 심판의 주님이 오실 때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6).

 


이 세대가 가기전에/에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