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2014. 1. 24. 14:17성경 이야기

 

 

요한복음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장 1-14절                                                          

 

요한계시록이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초림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재림의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 했습니다. 휴거의 사건으로 교회의 시대를 끝내시고, 7년 대환난을 통해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과 세상 나라를 시험하시고, 마지막에 재림하셔서 이 땅에 주님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을 건설하실 것입니다. 이렇듯 요한계시록은 장차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재림하실 주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면, 요한복음은 2,000년 전 이 땅에 처음 오셔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계시록에 앞서 쓰여진 요한복음은 4복음서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쓰여 진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고, 또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영생의 선물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이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는 말씀이라면, 요한복음은 이 심판에서 구원받고 생명(영생)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당분간, 이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또 이를 얻기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사도 요한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말씀(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로고스)’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1)하신 선언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이 창조되는 그 처음 순간부터 말씀되신 예수님이 함께하셨고, 이제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계시며, 마지막 날에도 그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말씀’을 믿는 겁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예수를 가까이하는 것이요,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날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간혹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그 말의 의미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말씀을 믿는 것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어느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말씀’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육하신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선언한 사도요한은 또 다시 “이 말씀이 곧 하나님”(1)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씀 되신 예수님이 곧 우리를 지으신 삼위일체의 하나님 구체적으로는 ‘성자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처 공자 마호메트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저들을 지으신 창조자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 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앞에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십니다. 1절에서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했는데, 14절에서는 또 다시 이 하나님 되신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왔다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영광스런 모습을 보니 그 분이 바로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초림 사건 즉, ‘성탄의 사건’을 ‘성육신의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마 1:22).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이 성경의 예언들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는 겁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말씀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찾아오신 ‘성육신’의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포된 말씀을 언약이라 하고, 기록된 말씀을 성경이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역사 속에 직접 찾아오신 ‘성육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소리와 문자로만 전달되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함께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들은 바로 성육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그 분의 교훈을 기록한 책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 모든 사건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계시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성육하신 말씀 되신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겁니다.


 

3. 거하시매(14).

 

‘거하시매’라는 단어 ‘에스케노센’은 본래 ‘장막을 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지날 때 하나님이 장막을 치시고 저들과 함께 하셨던 사건(출 33:7)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 장막을 치고 머무셨듯이, 성자 하나님 되신 예수님이 인생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육신의 장막을 치고 찾아오신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요, 성탄의 사건이라는 설명인 것입니다.

 

그렇듯 2,000년 전 육신의 장막을 치고 당신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은 33년의 짧은 생을 마치시고 제자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떠나시면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요 14:16),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다가 성령충만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육신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지금은 진리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은혜의 시대, 성령의 시대도 교회의 휴거 사건으로 갑자기 끝을 고하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환난의 때, 시험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7년간의 이 환난과 시험의 때가 끝나게 되면, 예수님은 다시금 장막을 치고 인생들과 함께 머무시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재림의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말씀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루시퍼의 화신인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이 ‘적그리스도의 나라’ 지옥인 것이고, 주님이 오셔서 다스리는 나라가 천국인 것입니다. 똑같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누가 통치하는가에 따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말씀되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장막을 치고 머무시며, 세상을 다스려주셔야, 이 땅이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가 ‘마라나타’로 예수님이 장막을 치고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오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것은 곧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육하신 말씀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우리와 함께 머무시기 위해 육신의 장막을 치고 찾아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다시금 장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하루하루 ‘마라나타’의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출처; 이 세대가 가기전에/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