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자가 휴거된다 - 1

2014. 3. 25. 11:44성경 이야기



 변화된 자가 휴거된다 1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주적 소망

소망(所望, hope)이란 현존하지는 않지만 장래에 있어서 실현될 것에 대한 기대(期待, expectation)를 의미한다. 장래성(將來性)이 소망의 특성으로써 기독교의 소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완성해 가시는 구원을 대망하는 것이다.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특히 신약의 소망은 종말론적 소망으로써 구원의 완성 곧 몸의 부활(復活 resurrection)을 지향한다.

몸의 부활은 가시적이자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영생의 출발점으로써 성도들의 1차적 목표가 된다. 단지 몸의 부활은 아무 때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 전 부활과 대환란 후 부활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소망을 갖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忍耐)와 연단(鍊鍛)임을 성서가 말한다.

 

5: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사도 바울은 믿음소망사랑을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삼대 자산(資産)으로 말한다. (고전12:13)

여기서 소망은 불멸의 의미를 갖은 경험적 요소이고, 현세의 소망이 아니라 새 우주를 지향하는 미래의 소망이다.

 

4:4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 세상 소망은 덧없고 인생의 날들은 베틀의 북보다도 빨리 지나가기에 여기에 소망을 두는 자는 실족하게 된다.

구원은 칭의(義認 justification)성화(聖化 sanctification)영화(榮華 glorification)3단계로 완성된다.

칭의(稱義)란 하나님께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법적 행위이다.

칭의의 소극적인 면은 죄의 용서이고, 적극적인 면은 하나님의 자녀로써(1:12) 영생의 자격이 주어지는(8:17) 것이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20,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는 일은 곧 천로역정의 시작이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공로로 천국에 갈 수 없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일이 영생의 오직 한 길이다.

영원한 속죄의 개념을 (9:12) 가지고 의인(義認)을 의인(義人)으로 착각하는 것은 위험한 신앙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일로써 이를 위해 성화(聖化)라는 인격적 변화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는 필히 그분의 형상을 입어야 (고전15:49) 한다.

기독교 신앙의 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적 본질을(형상) 실제로 얻는 일이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의 형상이 없는 자는 그 누구든지 거절하신다. 영원한 하나의 길을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몸 된 교회가 일체로 통일되는 영광의 혼인과 혼인잔치를 생각하게 된다.

 

결혼이란 뜻의 명사 가모스(gavmo")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결혼 잔치라는 의미로도 나타난다. (2:1-11) 구약시대나 예수님의 시대에 결혼식은 잔치를 베풀기에 적당한 기회였다.

22:1-1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임금이 베푼 결혼 잔치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배후에는 임금으로 표상된 하나님, 메시야와 신부의 혼인잔치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이 깃들어 있다.

성만찬 제정에 관한 기록은(26:29, 22:30)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기념과 연관되어 있다.

어린양(Lamb)의 혼인 잔치는(19:7-21)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우주적 교회의 궁극적인 연합과 통치를 그려준다.

영원한 미래의 3자는 창조주 하나님, 구원된 새 인류, 그리고 ()가 거하는 새 우주이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의 칭의-성화-영화의 개념은 자연계인 우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을 때 의롭다하심을 얻고, 자연은 의로운 인류를 포용할 때 의가 거하는 (3:13) 세계가 된다.

 

인간은 옛 자아가 죽을 때 새사람이 되고, 자연은 죄와 사망의 역사가 제거될 대 우주적 성화를 이룬다.

인간은 부활로써 영생을 구현하고, 자연은 새 하늘 새 땅으로 새롭게 창조 될 때 영원세계로 구현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우주를 지향하는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출 처 : 천안 은하교회 www.eunhachurc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