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2014. 8. 17. 21:47교회소식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박영돈 | 한국IVP | 348쪽

정확하다
복음주의 조직신학자 박영돈 교수의 신학적 감수성은 대단히 뛰어나다. 복음주의적 확신과 조직신학적 역량을 탁월하게 겸비한 그의 촉수에 한국 교회의 골수에 스며든 영적 바이러스들이 정확하게 포착되고, 그의 정교한 언어와 치밀한 논리로 빈틈없이 퇴치된다. 그의 촉수에 걸린 한국 교회의 핵심 문제는 ‘성장지상주의’다. 성장 신화에 중독된 한국 교회의 추악한 실체를 박영돈 교수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성공신화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대신하여 교회를 주관하면, 교회가 추구하는 지상 목표가 성장이 되며 교회의 모든 사역, 즉 설교와 목회와 전도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동원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인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까지 도구화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중의 기호와 욕구와 취향에 맞추어 상품화한다. 교인들을 영적 필요를 가진 소비자로 취급하고 그들을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서 설교와 예배도 소비자 중심으로 전락한다. 자연히 복음의 효율성과 대중성, 시장 점유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이 교회를 지배하면서 복음은 심각하게 변질될 수밖에 없다. 설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문화 코드와 기호에 은밀히 맞추는 죽음의 언어로 전락하는 것이다(40쪽).

동시에, 박영돈 교수는 한국 교회가 성장신화에 중독되어 성장지상주의를 복음으로 신봉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신학의 부재’라고 진단한다. “한국 교회가 보편적으로 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된 문제의 핵심에는 잘못된 교회론이 자리 잡고 있다. 성경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신화에 근거한 교회론이 마치 복음적인 가치관인 것처럼 왜곡되어 한국 교회를 오염시키고 변질시켰다”(38쪽). 한국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 학습도 없이, 제도로서의 교회를 유지·성장시키는 일에 목회자와 성도 전체가 일로매진해왔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성경적 이상에서 일탈한 기형적 종교제도로 퇴화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적 원인을 성장지상주의와 신학의 부재, 특히 교회론의 부재로 진단한 박영돈 교수의 신학적 감수성은 예민하고 정확하다.

용감하다
이 책에서 박영돈 교수는 지성인의 교양과 투사의 야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 교회의 추악한 실상을 거침없이 폭로할 뿐 아니라, 그 실상의 몸통인 대형 교회 목사들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심지어 복음주의 진영에서 한국 교회 전성기를 주도했던 소위 ‘복음주의 4인방’도 그의 ‘돌직구’를 피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신학자의 용기 있는 예언자적 통찰이다.

‘복음주의 4인방’은 한국 교회 발전에 기여한 점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대형화의 폐단을 막지 못하고 그 대세에 안일하게 편승하여 부흥하는 교회를 일구어 낸 성공한 목사라는 입지를 굳히는 데 머물고 말았다. 또한 아쉽게도 한국 교회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교회 운동의 물꼬를 트는 데는 공헌하지 못했다(23쪽).

그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그들의 잔칫상에서 용비어천가를 읊었던 뼈아픈 기억들, 아니 지금도 그들이 건축한 장엄한 성전에서 같은 대본을 읽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박 교수의 발언은 이 시대 신학자들의 ‘양심선언’이다.

건강하다
이 책은 건강하다. 조직신학자로서 박영돈 교수의 뛰어난 학문성이 그의 비판에 지성적 권위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박 교수의 진지한 영성이 그의 비판에 목회적 무게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즉, 학문과 영성이 이상적 조화와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그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고 권위를 갖는다. 또한 성령론을 전공한 박영돈 교수가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의 대안으로 성령충만과 성화론적 성장론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이 책은 날카롭고 냉정한 비판서의 범주를 넘어, 개혁과 회복을 위한 열정과 동력까지 확보했다. 다음의 인용문들에서 우리는 그의 맑은 영성과 지혜를 맛볼 수 있다.      

모든 인위적 방법과 지혜를 동원해서도 이룰 수 없는 것,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성장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성숙이며 한국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성장이다(69-70쪽).

지금부터라도 대형 교회는 자체 교회의 영광을 위한 업적 이루기 식의 봉사와 사역을 내려놓고 작은 교회들에 재정과 인적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작은 교회뿐 아니라 쇠퇴해 가는 한국 교회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83쪽). 

하지만 아쉽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아쉬움은 이 책의 장점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박영돈 교수는 이 책에서 성장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제시했다. 그야말로 모범답안이다. 그런데 그것이 역으로 결정적 약점이 되고 말았다. 날카롭고 용감하고 건강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한국 교회가 처한 위기의 정도를 고려할 때, 더 날카롭고 더 용감하고 더 건강했어야 했다. 이 정도의 분노와 공격으로는 전신갑주로 무장한 골리앗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왕 작정하고 칼을 뽑았다면, ‘은장도’가 아니라 ‘청룡언월도’ 정도는 꺼냈어야 했다.

박영돈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 교회의 병리현상을 다각도에서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했다. 대체로 그 진단과 처방은 적절하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성장지상주의와 대형 교회 현상을 혹독히 비판하면서, 현실적 차원에서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의 공생을 대안으로 모색함으로써, 갑자기 칼날이 무뎌졌다. 결국, 박 교수의 세심한 우려와 조건부 허용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안이 대형 교회들에게 또다시 면죄부를 제공하고, 그의 모든 공격과 통찰이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갈 위험이 농후하다.

끝으로, 박영돈 교수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건강한 공존과 협력을 강조했고, 양자의 문제와 책임에 대해서도 상술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이 목회자와 설교에 집중되었다. 이는 이 책의 백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심각한 약점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전략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선택과 집중이지만, 결국 목회자 중심의 전통적 교회론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평신도의 혁명적 각성을 통한 교권주의의 극복 없이, 한국 교회의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혁신은 목회자와 평신도 안에서 동시에 동일한 강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목회자, 특히 목회자의 설교 개혁에 한국 교회의 운명이 달린 것처럼 책의 상당 부분을 목회자와 설교에 할애한 것은, 박영돈 교수의 사고틀이 전통적 교회론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듯해 대단히 아쉽다.--배덕만 씀


배덕만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S. T. M)과 드류대학교(M. Phil., Ph. D.)에서 수학했다. 현재는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사랑교회의 담임목사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