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 - 흠 없는 믿음의 사람 요셉

2016. 1. 28. 08:41성경 이야기



창세기 25 - 흠 없는 믿음의 사람 요셉



창 39장 1- 23절      방월석 목사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던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 땅에서 고난을 겪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이 되어 억울한 종살이와 또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바로의 신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이곳에서 성실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가정 총무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요셉을 흠모하던 보디발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다가 요셉은 또 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렇듯 억울한 종살이 옥살이를 하는 와중에도 요셉은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과 성실함으로 주어진 환경을 복되게 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종살이, 옥살이라고 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삶을 산 믿음의 사람입니다.

요셉에 관한 설교를 시작하면서 요셉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욥, 다니엘과 함께 ‘흠 없는 삶을 산 사람’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요셉의 믿음과 인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1. 먼저,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제들 가운데 높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 땅에서 억울한 종살이와 옥살이를 했습니다. 옥살이를 할 땐 함께 갇혀있던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풀어줌으로 바로 왕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왕 앞에 불려간 요셉은 그 누구도 풀지 못하던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훗날 그가 처음 꾸었던 꿈처럼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며 양식을 구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이 처음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요셉의 생은 ‘꿈’을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요셉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을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표적이 바로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요셉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 안에서 꿈과 비전을 보여주시고, 이 꿈을 좇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2. 형통케 하는 자였습니다(3, 23).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창 12:2)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창 12:3)하십니다. 스스로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며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복되게 한 것처럼, 요셉도 그가 가는 곳마다 형통케 하는 복을 가져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을 땐 보디발의 집에 형통케 되는 복이 임했습니다(3). 요셉이 감옥에 가니 감옥이 형통케 되었다(?) 하십니다(23). 요셉이 훗날 바로의 꿈을 풀어줌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땐, 바로의 집과 애굽 온 땅에 형통케 되는 복이 임했습니다. 7년 기근으로 망할 수밖에 없던 애굽 땅에 오히려 번성케 되는 복이 임했습니다. 요셉의 생은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 뿐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된 우리도 요셉과 같이 가는 곳마다 ‘형통케 하는 복’을 가져와야 합니다. 이사를 가면 주변 이웃들이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야 하고, 우리가 속한 직장과 가정이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성실함으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을 복되게 해야 합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이 땅도,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비로소 축복받는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한국교회가 더 이상 “복의 근원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있습니다. 요즘엔 한국교회가 “복의 근원”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와 근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3. 책임지는 자입니다(6).

 

요셉은 가는 곳마다 책임지는 자였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 총무로 임명되어 집안의 모든 것들을 책임졌습니다. 감옥에서는 감옥의 제반 사무를 맡아 감옥의 일들을 책임졌습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는 애굽의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애굽의 모든 일들을 책임졌습니다. 훗날 기근으로 인해 양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을 아버지를 애굽 땅으로 불러들임으로 이스라엘의 운명을 책임졌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비록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지만 집안을 책임지는 장자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훗날 요셉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지도자란 책임지는 자입니다. 가장이란 가정을 책임지는 자이고, 대통령은 나라를 책임지는 자이고, 목사는 교회를 책임지는 자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직분과 상관 없이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가 진짜 지도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생들의 허물과 죄를 책임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도 이 시대를 책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이슬람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대중매체 속에 침투한 사악한 적그리스도의 문화를 보면서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배도의 길, 세속화의 길, 종교통합의 길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버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책임을 지려고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외면하는 자가 아니라 가는 곳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책임지려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충성된 자입니다(9, 22).

 

형들의 손에 팔려 억울한 종살이를 시작했지만,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요셉의 충직한 모습을 보고 보디발이 그에게 가정총무를 맡긴 겁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뒤에도 요셉은 감옥을 책임진 전옥에게 인정받는 충직한 일꾼이었습니다. 이후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바로왕의 충성스런 일꾼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처럼 그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충성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도 충성스러운 일꾼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부모와 형제들을 애굽 땅으로 데려와 이곳에서 큰 민족으로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경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마 25:21)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요셉인 것입니다.

 

“충성된”이라는 단어가 영어성경(KJV)을 보면 faithful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직하다’는 뜻입니다. ‘충성된 자’란 곧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일을 맡겨놓으면 마음이 든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하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혹시 이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하나?” 이렇듯 염려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은 잘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능력보다 성실함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능력은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실 수 있지만, 능력이 많아도 불성실한 사람은 불안해서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타국에서 돌아온 주인이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부지런히 일한 종에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고, 달란트를 묻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종에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는 말씀이 나옵니다(마 25:21,26). “착하고 충성된 종,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씀은 “충성된 것이 곧 선한 것이고, 게으른 것이 곧 악한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부지런히 충성해서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 선한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겁니다.

 

잘못된 일을 하는 것 뿐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우리 주변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는데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묻어두고 시대적인 사명을 외면하는 것이 악입니다. 주어진 달란트와 직분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충성스런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억울한 종살이 옥살이를 했지만 그곳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 4:2)이라 하시고,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마 25:23)하십니다.

 

5. 순결한 자입니다(9).

 

본문 7절부터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미혹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요셉이 집요하게 다가오는 보디발의 아내의 미혹을 믿음으로 뿌리쳤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7세의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을 받고 가정총무가 되었다면, 요셉의 나이가 대략 20세 초반이었을 겁니다. 혈기가 왕성하고 이성적인 유혹에 넘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끝까지 이 미혹을 뿌리치고 순결함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귀한 일을 맡기신 겁니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우리는 정절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절을 지킨 아내만이 남편 앞에 떳떳히 설 수 있는 것이고, 정절을 지킨 성도들만이 신랑 되신 예수님이 오실 때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와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하십니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하십니다. 예수님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세상과 돈을 더 사랑한다면 이것이 곧 우상숭배요 영적인 간음인 것입니다. 일편단심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변치 말고 요셉처럼 끝까지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결론

 

요셉은 꿈의 사람이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을 가져온 사람이요, 책임지는 자요, 충성스러운 일꾼이며, 끝까지 정절을 지킨 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