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십자가

2016. 3. 25. 10:01성경 이야기


마태복음 27장 32-38절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 전(행 11:26)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컫던 공식적 명칭은 ‘제자’였습니다.

 

제자란 스승의 교훈과 삶을 본받고 따라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제자라 부른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예수님의 삶과 교훈을 본받고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이 가신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제자 된 우리가 가야할 길도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는 과정에 등장한 세 부류에 십자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똑 같은 십자가였지만, 그 내용으로 보면 전혀 다른 십자가를 진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 세 부류의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생각해봅니다.

 

 

1. 강도들이 진 십자가가 있습니다(38).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흉계를 꾸민 세력들은 예수님이 마치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예수님 좌우편에 흉악한 강도들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강도들은 예수님과는 달리 그야말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을 만큼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비난하다가 멸망의 길을 갔고(눅 23:39), 다른 편 강도는 마지막 순간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함으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는 약속을 받았지만,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었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는 달리 이들의 십자가는 부끄러운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런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면 안된다는 겁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20)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은 받아도 비난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일부 뻔뻔스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신들의 명백한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마치 십자가의 고난처럼 미화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고난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십자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상관없는 부끄러운 ‘강도들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이런 십자가는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2.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가 있습니다(32).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먼 구레네(Cyrene, 북부 아프리카의 도시로 추측됨) 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왔던 시몬은 우연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얼떨결에 주님이 지시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진 십자가이지만,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족들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고(막 15:21),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부를 만큼(롬 16:13) 구레네 시몬의 부인도 초대교회 안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뜻 밖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겁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소를 몰고 밭을 갈다가 엘리야 선지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왕상 20:19).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도 목자로 일하다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암 1:1,2). 이처럼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기회가 뜻하지 않게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를 질 때, 자원하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구레네 시몬처럼 얼떨결에, 또는 억지로 십자가를 진다 할지라도 이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35).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강도들의 십자가처럼 죄가 있어 지신 십자가도,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지신 십자가도 아니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신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이 희생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지라 하신 십자가도 바로 이런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4. 결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하십니다. 죄가 있어 져야 했던 강도의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라 할지라도 사명을 감당하면 상급이 주어지지만, 기왕이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방월석 목사

[출처] 세 개의 십자가|작성자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