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2022. 5. 4. 23:13하늘나라가는 비밀문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자주색 망토를 넉넉하게 걸친 남자가 남루한 차림으로 무릎을 꿇은 소년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친밀감, 붉은 망토의 온화한 톤, 

소년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소년의 어깨를 감싸 쥔 노인의 두 손… 

17세기를 풍미한 화가 렘브란트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신앙의 물감으로 

고스란히 화폭에 옮겼다....헨리 나우엔

 

 

탕자의 귀환

 

누가복음15장의 탕자의(우리자신) 귀환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극적인 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스런 이야기이다.

 

어느 날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유대인의 재산 상속시 장자에게는 전 재산의 2/3을, 차자에게는 1/3을 나누어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 유산을 상속받는 것은 아버지가 죽을 때 받는 것인데 둘째아들이 유산을 미리 요구했다는 것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례하고 버릇없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유산을 내어주었다.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은 둘째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이름 모를 향락의 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돈과 시간과 젊음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자유와 방탕을 구가하는 삶을 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

 

어느덧 돈이 떨어지니 아부하던 친구들도 떠나가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먹을 것도 없는 거지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6)

 

쥐엄 열매는 지중해 동부에서 자라는 콩나무 열매를 말한다. 이 열매는 약간 달콤한 맛이 나는데 일반적으로는 동물의 사료로 사용되나 기근시에는 가난한 사람의 양식으로도 사용되었다.

 

둘째아들은 먹을 양식이 없어 돼지가 먹는 사료라도 먹고자 하지만 그마저 돼지에게 빼앗기고 먹을 게 없어서 굶기가 태반 사였다. 극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이윽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버지를 떠난 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 아버지께 돌아가자. 그러나 무슨 낯으로?’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몹쓸 짓을 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밑바닥에 있다 보니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둘째아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난 쫓겨나겠지? 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고 유산을 탐했던 정말 못된 아들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내 몫으로 나눠주신 그 재산을 몽땅 탕진했으니, 내가 용서받기는 어렵겠지?

그래, 아버지께 나를 아들로 취급하지 말고 그저 아버지의 많은 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취급해달라고 해야겠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도달 할 수 있는 좋은 땅이 되었던 것이다. 메마른 땅을 갈아엎고 흙을 잘게 부숴 씨를 받을 상태가 되기 전에는 생명의 씨인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고 결실이 되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결심하고 터벅터벅 집을 향해 다가가는 둘째를 향해 맨발로 뛰어오는 노인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먼발치서 집을 향해 다가오는 아들의 발걸음을 한 눈에 알아보고 맨발로 뛰어와 냄새나는 둘째아들을 부둥켜안고 볼을 비벼대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구원의 옷)을 입히라고 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 아버지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아버지: 내 아들아 잘 왔다. 정말 잘 왔구나. 너를 하인이라 불러달라니 당치않다. 너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아들이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22-24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집에 가서 돼지 냄새나는 더러운 몸을 씻긴 후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연신 입을 맞추고 아들이 돌아옴을 기뻐했다.

그리고 하인들을(천사들) 향해 큰 잔치를 열도록 명령했고 동네 사람들을 다 초청하여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것에 대한 기쁨을 맘껏 표현했다.

 

제일 좋은 옷은 구원의 옷이며 손에 가락지는 약속이고 발의 신은 복음의 신이며, 살진 송아지는 예수를 말한다.

 

한편 아버지 편에서는 이 탕자아들이 돌아오기 전에도 다 용서하고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사실 그게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기도 전, 2000년 전에 이미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모조리 용서하시고, 하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죄 많고 타락하고 추악해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행복에 겨워하신다.

 

둘째아들은 비록 방탕하게 살던 불효막심한 아들이었지만 그는 분명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선 날이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둘째아들이었지만 아버지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 둘째처럼 마음중심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고후6:2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하늘문은 언제까지 열려있지 않을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은혜시대가 끝남)구원이 이스라엘에게로 넘어가고 이방인에게 열려있던 하늘문은 그만 굳게 잠길 것이다.(롬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