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의 혼인잔치!

2013. 11. 19. 10:18요한계시록





어린양의 혼인잔치! (계 19장)



요한계시록 19장은 일곱번째 대접의 재앙으로 바벨론이 멸망받은 뒤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있게 될 천상의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잔멸하려 하던 세상나라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의 길을 가자, 하늘에서는 삼중적인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것을 흠모하고 저와 함께 음행과 방탕한 삶을 즐기던 자들에겐 애통의 제목이 

되었지만 그 동안 바벨론에 의해 많은 고난을 겪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찬양과 기쁨의 제목이 되고 있습니다.

 

I. 할렐루야

 

I. 먼저 바벨론에 의해 핍박 받고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1,2절)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 하늘에서 큰 무리가 할렐루야로 찬양하는 음성이 들려오는데 2절에 보면 

구체적인 찬양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이 말씀을 통해서 살필 때,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제일 먼저 찬양을 드린 이 큰 무리는 바로 

이 ‘바벨론’으로 인해 순교한 성도들, 구체적으론 ‘환난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6장 10절에서 “우리 피를 신원해 달라”고 요구했던 환난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어 이제 

바벨론의 멸망으로 응답된 것입니다. 이들이 이제 천상에서 이것을 바라보며 찬양으로 화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의 찬양이 있습니다. (3,4절)

 

두 번째 찬양은 이십사 장로로 대변되는 ‘휴거된 교회’의 찬양입니다. 교회를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이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7년 대환난 동안 적그리스도의 나라 바벨론에 의해 핍박을 받다가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24장로로 상징되는 휴거된 교회의 찬양이 있은 뒤 보좌로부터 다시금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5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은 특정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환난 성도들과 환난 전에 휴거되는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모두 

모여 이제 세상 나라 바벨론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을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남성 파트와 여성 파트가 각기 찬양을 부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함께 찬양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II. 어린양의 혼인잔치

 

7절부터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직전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도의

 휴거사건을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로 

교회가 7년 대환난을 통과한다는 주장을 하십니다.

 

하지만 이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몰라서 생긴 오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데는 12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먼저, 신부될 사람을 선택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아시고 택하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번째, 신랑은 신부될 사람과 그 가족에게 일종의 지참금을 지불합니다.

이것을 ‘모하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보혈의 피로 값주고 사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번째, 신랑과 신부가 언약식을 맺게 됩니다.

언약식을 맺으면 실질적인 부부의 관계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

 

네번째, 언약식을 맺을 때 ‘키투바’라고 하는 공식문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이 계약을 히브리어로 ‘쉬트레 에루신’이라고 칭하는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이름이 공식적인 문서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이 언약식에는 반드시 신부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겠다는 신부로서의 고백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하십니다.

 

여섯번째, 신부에게 선물이 주어지고,

신랑과 신부는 언약의 잔을 나누어 마시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언약의 잔을 나눈 것입니다.

 

일곱번째, 언약식을 마친 신부는 ‘미크바’라고 해서

물에다 몸을 담그는 정결의 예식을 치룹니다.

이는 구속 받은 성도들이 세례를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되었던 초대 교회의 전통과 일치합니다(행 2:41).

 

여덟번째, 신랑이 떠납니다.

언약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는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하십니다.

 

아홉번째, 신부의 곁을 떠난 신랑은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장차 신부와 함께 머물 처소(신혼방)을 예비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하셨습니다(요 14:2).

 

번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처소를 예비하는 일을 마친 신랑은

한 밤 중에 나팔 소리와 함께 찾아와 신부를 데려갑니다.

이때 부는 양각나팔을 ‘소파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여 성도들을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살전 4:16,17). 즉 휴거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열한번째, 신랑과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간 신부는

이곳에서 본격적인 결혼의 예식을 치루게 됩니다.

이 혼인의 예식은 7일간 이어지는데 먼저, 신부는 신랑과 함께 신랑이 예비한 처소에서 일주일간의

 달콤한 허니문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신랑은 신부를 자신이 예비한 처소에 감추어 둡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네수힌’

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신실한 교회가 사라진 뒤(휴거사건), 지상에서는 7년 대환란이라는

 고난의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신부된 신실한 교회는 주님이 예비한 처소에서 주님과 함께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기쁨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열두번째, 7일 간의 허니문이 끝나는 마지막 날,

신랑은 신부를 이끌고 초대된 사람들과 함께 공식적인 만찬을 열게 됩니다.

계시록 19장에서 7년 대환란이 끝난 뒤 벌어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바로 혼인예식의 

마지막인 공식적인 만찬인 것입니다.

 

이 때,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은 신랑의 아버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하십니다.

 

여기서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 즉, 신랑의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을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부는 물론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이 혼인잔치에는 신랑과 신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초대한 

하객들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어린양의 신부와 이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을 

자들을 구분해서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 모두가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맞지만,

신부로 참여하는 자와 하객으로 참여하는 자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신부’로 묘사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호세아’입니다. 

이미 여호와의 신부로 하나님과 결혼한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객으로 참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졌다가 순교당한 성도들도 어린양의 신부로 

참여할 기회를 놓친 자들입니다. 이들도 ‘청함을 입은’ 하객으로 참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들은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구원의 자리에 설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은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시대, 교회의 시대를 살면서 끝까지 순종함으로 믿음을 지킨 신실한 성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혼인잔치를 위해 예비된 아내인 어린양의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었다고 했습니다(8절).

 

이런 모습은 음녀 바벨론이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각종 금과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하고 

있던(17:4) 모습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성도, 즉 믿음의 정절을 끝까지 지킨 정결한 성도들만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출처 :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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