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종교다원주의 WCC와 기독교의 유일성

2014. 2. 10. 10:15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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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은 소통입니다”… 정성욱 교수 인터뷰


국민일보|입력2008.06.17 18:12|수정2008.06.17 21:47


다시 '소통(communication)'이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제발 소통 좀 하자며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촛불을 
들고 있다. 한국 교회의 소통 문제도 안팎에서 지적되고 있다. 반기독교적인 악플들을 비롯해 지난 2일 교단을 초월한 
신학자 140명의 '재정향' 선언도 결국 한국 교회의 소통 부재를 지적한 목소리였다. 14일 오전, 장신대 세계교회협력
센터에서 만난 정성욱(42·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는 한국 교회와 최근 사회적 이슈들을 소통을 주제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삼위일체, 언약사상, 예수님의 성육신 등 기독교의 중심 교리를 예로 든 정 교수는 "기독교의 본질이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소통하는 신학이 아니라면 신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바로 소통입니다." 특히 정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성부 하나님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식이 아니다"며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소통을 통해 놀라운 코이노니아(친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안티 기독교세력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의 지적 속에 교회 갱신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만큼 배척하거나 맞대응할 게 아니라 
반성과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도 전도의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이들의 
비난 이면엔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배어 있는 만큼 그들의 영적 필요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안티 기독교세력과 맞붙어 싸우는 것은 한국 교회의 수준만 낮출 뿐"이라며 "피하거나 쉬쉬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복음주의에 달렸다." '소통' 외에 정 교수가 인터뷰 도중 가장 강조한 내용이다. 정 교수는 
1993년부터 3년간 하버드대학에서 신학석사(M. Div)를 공부했다.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여겼지만 종교다원주의가 
일반화된 하버드대에서 그는 그만 흔들리고 만다. '종교다원주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신학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진지한 고민에 직면한 그에게 해답을 준 건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논문. 종교다원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한
 두 편의 논문을 통해 정 교수는 비로소 신학할 이유를 발견했던 것이다.


"맥그래스의 비전은 복음주의의 학문적 가치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연과학을 파고드는 이유는 오늘날 가장 
학문적 신뢰성이 높은 학문이라고 본 거죠. 과학적 진리가 성경적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고, 실험이나 연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후는 복음주의신학의 학문적 신뢰도가 매우 높아진 시기인데, 여기에 맥그래스 교수가 
기여한 바가 많습니다."

스승 맥그래스와 마찬가지로 정 교수의 비전 역시 한국 복음주의의 학문적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여전히 감성적인 
면에 기운 한국 복음주의에 지성을 부여함으로써 가장 균형잡힌 신학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복음주의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그리고 중국 교회의 미래라는 말과 함께.

정 교수는 또 한국 교회의 성숙과 갱신을 위해 남은 생애를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제는 다시 소통으로 
돌아왔다. 성숙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16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그의 저서엔 등장인물이 여럿이다. 그들의 고민을 나누고 답변하는 형식이 독특하다.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변증
'이 대표적이다. 정 교수는 "나는 그동안 학문적 글쓰기가 아닌 대중적 글쓰기를 해왔다"며 "이 모든 것이 
소통을 위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