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는 무엇인가 2부 전호진박사

2015. 2. 17. 22:51성경 이야기



종교다원주의는 무엇인가 2부 전호진박사


신 중심의 구원론


힉과 니터는 신을 중심으로 다른 종교들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을 중심으로 모든 종교가 회전하고 다만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신과의 거리가 멀리 있는 위성이냐, 혹은 가까이 있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는 자연과학의 원리를 종교에 도입하여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를 논한다.


영국 장로 교회 종교철학자인 힉은 복음주의 전통의 문자적 성경 주의와 무비판적 초자연주의를 거부하고, 현대는 현대 경험주의 철학과 실증주의와 종교사학파의 관점에서 기독교만이 절대라는 주장은 포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이 하나님에게 도달한다는 프톨레미적 사고는 포기되어야 하고, 모든 종교를 통하여 신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한 신에 도달하는 많은 길에 불과하므로 사람은 어떠한 종교를 택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힉은 기독교의 절대성 주장은 인류의 전체적인 종교 생활을 알지 못했던 무지한 시대의 산물로 이것은 오늘날 모순이며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비기독교 사람이라고 버리시는 냉정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힉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폴 틸리히가 말하는 궁극적 존재나 진리, 최고의 신적 실재, 초월적 존재, 완전자로 표현하기 더 좋아한다. 이것은 신은 어느 특정 종교의 신과 동일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


종교 다원주의의 가장 핵심 되는 이슈는 역시 기독론이다.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와 종교에 가능하다는 소위 우주적 그리스도, 혹은 로고스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계시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또 더 이상 규범적인 것도 아니라고 본다.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대화함으로 오직 예수라는 전통적 신앙 고백을 거부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은 예수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이름이 될지언정 ‘그리스도’는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도 가능한 중요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인도의 천주교 신학자 파니카는 종교 다원 주의자인데 그는 기독교가 나사렛 예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라고 고집 하는 신앙은 신적 신비를 나사렛 예수 안에만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각 종교는 자기 나름대로의 중보자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데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카르쉬나가, 불교에서는 불타가, 회교에서는 알라가 중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p. 56) 


파니키에 의하면 힌두교와 기독교는 다 같이 그리스도가 역사 하기 때문에 양 종교는 실존적 차원에서 대화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비록 다른 종교와 문화에는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하였다. 이 원리는 기독교와 힌두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애니미즘, 회교는 물론 아즈텍인, 몽고인, 헬라인, 구라파인 및 15,000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에게도 해당된다고 한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성육하였다는 가르침은 예수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충분하고도 효과적인 구원의 접촉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접촉점을 배제하는, 결코 유일무이한 신과의 접촉점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구원을 추천할 때 다른 신앙의 구원을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뜻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이외에는 달리 구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p.58)


힉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기독론은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스트라우스와 바우엘의 신학에 기초하는 것으로, 그는 예수는 결코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신약의 초대 교회 신자들이 한 그리스도의 유일성 고백은 ‘하랑의언어’나 ‘생존의 언어’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파니카와 힉의 기독론에 동의한다. 행 4:12의 ‘다른 이름은 없나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였지만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역설한다.(p. 58).


한국 교회의 종교 다원 주의자들도 학문의 독창성을 주장하나 이상 열거한 학자들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변선환 교수도 신론과 기독론은 힉, 니터, 파니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프리츠 부리와 특히 일본의 야끼세이찌와는 사상의 맥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우주적 그리스도를 중심 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의 원을 그린다고 말하며, 나아가서 모든 종교가 체험하는 신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신이라는 것이다. 변 교수가 말하는 신 역시 존힉과 같이 절대적 존재자이지 인격적 신은 아니다.


존힉과 폴 니터는 종교다원론을 제창하게 된 원인으로 첫째는 전통적 기독교는 서양적이고 공격적이고 우월적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자세를 보여 왔다. 둘째는 이러한 우월주의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까지 타종교의 주장들을 주의 깊게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셋째는 현대의 상대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들은 부적절한 상황이 되어졌다. 넷째로 현대 성경 해석학은 스스로 이러한 절대적 주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는 비절대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이러한 견해는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는 동등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사실들에 있어서 기독교만이 특권이나 우월성을 더 이상 주장하여서는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존 힉은 비관용주의 배타주의에서 부드러운 포괄 주의를 넘어서서 기독교의 배타성과 우월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다원 주의자들에게 기독론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 해석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신성은 물론, 유일성을 부정하고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p. 65)


종교 다원주의 비판


이 신학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종교를 시장 논리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 시대는 물론 절대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시대이지만 신앙의 진리를 상대화할 때 모든 것은 상대화되어 인류가 따르고 복종하며 충성할 진리나 신은 없어지고 만다. 다원주의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혼합 주의와 이단에 못지않게 기독교 교회와 기독교 선교에 심각한 도전이 되는 신학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유대교, 힌두교, 회교, 시크교 등 다른 세계의 종교들은 다원주의가 아니라 독점과 배타를 버리지 않는데, 기독교 신학자들이 스스로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하면서 다원주의를 노하는 바 그 유익성은 무엇인가? 종교 다원주의는 비판적인 성경 해석에 근거하면서 동시에 70년대의 사회 정의와 민주화를 외치는 해방신학과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민중 신학에 참여하는 신학자들이 종교 다원주의 신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원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을 신화로 해석함으로 인간 행위의 규범이 됨을 거부한다. 다원주의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문자 주의로 무시함으로 우리들의 신앙의 근거가 되는 기초를 제거하게 된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신학 이론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유일성을 부정하는 비평 주의에 근거한다. 


현대 불교나 회교도 기독교를 공격하는데 그들의 비판 역시 자유주의 신학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언약으로 규정한다. 이 언약에 의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등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였고, 또 다른 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성경은 혼합 주의나 다원론을 모두 배제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신은 인격적인 신이 아님을 시인하여 기독교의 신관을 반영하기보다는 힌두교의 절대적 존재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종교 다원주의는 사도행전 4:12의 ‘다른 이름은 없다’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을 사랑의 언어, 혹은 상황적 고백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우주적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에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다원론자들은 우주적 그리스도, 혹은 로고스에 대하여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동일한 구원에 도달한다고 함으로 기독교 구원의 독특성을 부정한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말하는 구원의 개념과 본질의 차이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가 서구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는 식으로 기독교의 부정적인 차원을 부각시키는 데 더 열을 올린다. 종교다원주의의 기독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기여한 긍정적인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주의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교다원주의는 혼합주의이며 이단에 못지않게 기독교 교회와 기독교 선교에 심각한 도전이 되는 신학이다.


출처- 드림위즈 문서검색

[출처]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작성자 특공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