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04 - 전도인의 사명

2016. 7. 10. 21:12성경 이야기



고린도전서 3장 1-9, 4장 1-5절

 

지난 시간에 살펴본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로 요약되는 복음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복음이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1:23)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1:24)하십니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과 지혜에 대해서 설명한 후 오늘 본문에서는 이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4:1,2)하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전도자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자세가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살핍니다.

 

1. 먼저 전도자는 심고 물주는 자라 하십니다(3:6,7).

 

a.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다”는 말씀은 먼저 전도자는 심고 물주는 자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하나 되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히 사도 바울을 통해 처음 복음을 듣고 교회 개척에 함께한 바울파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뒤 이곳에 파송 받은 아볼로에게 영향을 받은 아볼로파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6)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심고 물주는 사역을 감당했던 바울과 아볼로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저들을 보내어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저들이 아직 육신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3). 어린 아이들과 같이 육신에 속하여 서로 시기하고 다투다가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겁니다.

 

어린 아이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람을 의지하는 겁니다. 믿음 안에서도 어린아이처럼 신앙의 홀로서기를 못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물론 믿음이 약할 때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신앙의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기에 자기가 의지하는 사람들을 따라 분파를 만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미성숙한 교회’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6)하십니다. 저들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바울과 아볼로는 실상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린도교회라는 밭에 씨를 뿌리고 물주는 일을 감당했던 종들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심고 물주는 사역을 한 바울과 아볼로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겁니다.

 

b.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다”는 말씀은 또 전도자의 사역 가운데 심는 사역과 물주는 사역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밭에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자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는 사역 즉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하고, 어떤 이들은 심겨진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사역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뿌린 씨앗을 거두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요 4:36). 사역 자체로만 본다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사역보다는 익은 곡식을 거두는 사역이 더 재미있는 겁니다. 하지만, 거두는 자들은 누군가 먼저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기에 내가 거두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잘 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3년 간 뿌린 씨앗을 제자들이 거두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할 때마다 3천 명 5 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지만(행 2:41, 4:4), 이는 베드로의 설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뿌린 씨앗을 베드로가 거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도 70, 80년대에 유례없는 큰 부흥을 경험했지만, 이것은 당시 사역했던 목회자들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일제시대와 6.25 전쟁의 와중에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한 성도들의 수고를 저들이 거둔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선배들의 신앙으로 큰 부흥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정작 자신들은 한국교회 안에 좋은 씨앗을 뿌려놓지 못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목회 세습이라는 가라지를 뿌리고, 기복신앙과 세속화라고 누룩을 한국교회 안에 심어 놓음으로, 한국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고 쇠퇴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뿌려놓은 것이 없기에 거둘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뿌리는 자가 있고, 물주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두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면 누군가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는 수고를 했기에 내가 지금 거두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2.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하십니다(3:7).

 

바울이 심고, 아볼로가 물 주었지만 이것이 자라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하나님이 역사해주시지 않으면 씨 뿌리고 물주는 수고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때 비로소 우리의 수고가 결실로 맺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는 유대인들 앞에서 구약 성경을 꿰뚫는 탁월한 설교를 했지만, 아무런 전도의 열매도 맺지 못하고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행 7장). 그런데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마지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말씀을 듣고도 니느웨 성 전체가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욘 3장).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뿐, 그 결과에 대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입니까?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이십니다. 그러기에 씨 뿌리고, 물주는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했다면 그 결과로 인해 낙심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각자 자기의 일한 대로 상을 받으리라 하십니다(3:8).

 

씨 뿌리는 사역이던, 물주는 사역이던, 아니면 거두는 사역이던 복음 전파의 사역에 충성한 자들은 각자가 자기가 일한 대로 상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역처럼 눈에 드러나는 열매가 없어도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이 아시고 마지막 때에 상급으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4장 4절과 5절에서도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 주께서 오시면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마 6:6)이 다 아시고 마지막 때에 갚아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해야 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고린도 교인을 향해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라”(4:3)하십니다. 사람의 판단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하겠다는 겁니다.

 

4. 전도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기에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자가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만을 기쁘시게 하며,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책임을 맡은 자인 것입니다.

 

간혹 보면 목회자를 청빙하고 나서 마치 자신들의 일꾼처럼 부리려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장로들이 인사권을 가지고 목회자를 길들이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행태에 적당히 타협하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사람의 일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망각한 행위입니다.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자는 언제나 내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 전도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4:1).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오래전부터 감취었던 ‘비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바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시고 감취었던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이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강조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복음을 의미한다면, ‘맡은 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무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청지기(steward)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청지기(오이코노무스)는 주인을 대신해서 주인의 재물과 종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종입니다. 신분은 종이지만, 주인으로부터 전권을 받아 주인과 다름없는 권세를 행사하는 종이 청지기입니다. 보디발의 집을 책임졌던 요셉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을 가지고, 이를 필요한 자들에게 잘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마 13:52)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 즉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이 말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의 사명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일꾼된 우리가 해야 가장 중요한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곳간에서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때에 따라 이 말씀을 전하는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사명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외면한 채, 구제와 사회봉사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을 참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과 WCC 종교 통합에 앞장서는 교회들을 보면 ‘사회봉사’를 많이 강조합니다. 교회의 본질이 세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저들은 주장합니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이는 성경과 위배되는 인본주의 사상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한 겁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길을 알려주시려고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 사명을 외면한다면 참된 교회라 할 수 없고, 이 사명을 외면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주신 가장 중요한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6.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십니다(2).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맡겨주셨으니 이제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전해야 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전해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기쁜 소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라 하셨습니다(왕하 7:9). 아람군대가 남겨두고 간 음식을 먹고 마시던 문둥병자들은 사마리아 성 안에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며, “만일 밝은 아침까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벌이 내려질 것”(왕하 7:9)이라 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깨달았으면 전해야 한다는 겁니다. 알고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벌이 임한다는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는 관원들을 향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했습니다. 보게 하시고 듣게 하셨으면 전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십니다.

 

7. 결 론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 하십니다. 또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십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할 때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출처; 에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