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 이기는 자 (4)

2013. 4. 18. 11:41성경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 이기는 자 (4)

 

두려움에 쫓기며 시달리십니까? 두려움은 당신이 이미 받은 축복과 그 외에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망치곤 합니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릴지도 모르는 도처에 잠복해 있는 재앙의 환영을 보고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심각한 질병이나 경제적 상황의 악화로 인한 파산, 커져가는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현재 매일 일어나고 있는 도둑, 강도, 폭력과 테러에 대한 두려움, 악한 세력에 대한 두려움-끔찍한 결과를 낳는 저주와 주문들, 폭동과 시가전, 기근에 대한 두려움, 기독교인에게 임박한 핍박에 대한 두려움,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시작된 마지막 때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건강을 앗아갑니다. 두려움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통을, 이 엄청난 두려움의 병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는 한 선교단체에서 여행 강사로 섬기면서 독일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종종 공습을 경험했는데, 심지어 저공하는 전투기가 폭격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두려움을 느낄 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짧은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역을 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겼을 때, 그 분께서 가까이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1962년에 쿠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었던 상당한 동요와 전면적인 소동이 있었고, 나 또한 당시 느꼈던 두려움이 아직 되살아나곤 합니다.  

 

“지금 다시 세계 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지난 전쟁보다 훨씬 더 끔찍할 거야.” 이번에는 내가 자매회라는 대가족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해야할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 종종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임재와 이런 확신을 느낄 때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믿음에서 예수님을 배제시켰을 때만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섬뜩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모시면,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입견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갇혀 있는 공포의 순환 고리를 끊으실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쉼을 얻게 됩니다.  

 

오래 전에 두려워하는 제자들 곁에 계셨던 것처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곁에도 찾아오실 것입니다.  

 

위엄있는 이 말에, 그 분의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흘러들어와 담대해집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문제와 고통이 필연적인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개입하셔서 모든 것을 변화시킴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각은 우리와 매우 다릅니다. 이 사실을 믿는 만큼, 우리는 상황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을 밝히시는 빛이자, 평화를 주시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평화의 왕으로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역경중에 있는 우리곁에 오셔서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사랑의 방법입니다. 그 분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문제를 처리하십니다.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을 때, 주님께서는 위험과 고통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시며, 그분의 초자연적인 돌보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 우리는 이 시편의 말씀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 138:7)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믿으면, 두려움은 용기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삼킬 것처럼 위협해오는 파도를 보고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명령과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사랑을 멸시하는 것이다. 너희는 마치 고통 중에 있을 때 내가 돌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주님은 위험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둘러 오십니다. 파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파도에게 명령하시고, 배의 키를 직접 잡으십니다. 그 강하신 팔로 파도를 넘어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의 두려움도 몰아내시지 않겠습니까? 

 

삶 가운데 찾아오는 특정한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역경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만 두려움이 우리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결코 주시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0:13 참고)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요일 4:18) 반면, 우리가 올바른 두려움,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성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는다면, 우리를 괴롭게 하는 두려움과 다가올 고통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다가올 고통이나 우리를 해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주님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죄를 씻으러 빛 가운데로 나오지 못하는 일로 인해 주님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시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사망이나 생명이나…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고 승리를 선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면서 빛 가운데 행하고 회개하고 참회하며 살아가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을 새로이 알게 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신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1, 23)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움은 고통의 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기쁨과 축복은 모든 형태의 고난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도 예외가 아닙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공격해올 때 모든 이해를 뛰어 넘는 평화,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리에게 강물처럼 흘러와 기쁨으로 가득 넘치게 하는 그 평화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십니다. 특히 우리가 두려움에 시달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오시지 않을 수 없기에, 우리는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평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성, 영원한 평화의 성, 두려움과 고통이 없는 그 곳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평화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이 놀라운 평화를 당신에게 선물로 주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고통과 두려움에 직면한 순간이야말로 이 귀중한 선물을 믿음으로 요청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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