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처를 기억하라!--존라일

2014. 9. 30. 11:23성경 이야기


 

 

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17:32).

 

성경에서 이 짧은 본문만큼 심각한 경고도 없다.
주님의 말씀이다.

롯의 처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남편 롯은 “의인”이었다.
소돔이 멸망하던 날, 그녀는 남편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즉시 죽고 만다.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주님은 지금 그녀를 교회에 주는 경고로 제시하고 계신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

교회에는 세속성의 위험이 해마다 점증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창궐한 세속성이라는 질병에 대비하고

안전히 거하기 위해서는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한다.


1. 롯의 처가 누렸던 종교적 특권

아브라함과 롯이 살았던 시대에는

구원에 이르는 참된 신앙이 아주 드물었다.
성경도, 목회자도, 교회도, 전도지도, 선교사도 없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은혜를 입은 소수의 가정에만 국한되었다.

롯의 처는 분명 하나님의 큰 호의를 입은 여인이었다.

경건한 남편을 두었고,

이런 남편과 결혼해서 모든 믿는 자의 아비가 되는

아브라함을 백부로 얻게 되었다.

이들에게 종교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었다.

삶의 지배적 원리였고, 모든 행위의 근원이었다.

그녀가 누린 것은 결코 작은 특권이 아니었다.

은혜를 누릴 기회가 많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특별한 경고와 메시지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은혜없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녀에게 있던 신앙의 모양은 보이기 위한 것이었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함께 지내는 사람들 때문에 한 것이었다.
마음이 세상에 가 있었다.

세상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태로 살았고, 죽을 때도 이런 상태였다.

종교적 특권만으로는

어떤 영혼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라.

풍성한 은혜의 방편과 기회가,

해처럼 내리쬐는 환경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가장 탁월한 설교와 양질의 가르침을 누릴 수도 있고,

빛과 지식과 거룩을 누리고 선한 사람과 더불어 지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회심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끝까지 그런 상태로 살다가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될 수도 있다.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종교적 특권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종이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그들은 성령의 은혜가 필요했다.

우리 마음과 삶에서 열매 맺도록 애를 써야 한다.
이런 특권에도 불구하고 별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적극적으로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불로 밀초가 녹기도 하고, 진흙이 굳기도 한다.
같은 햇빛이라도 살아있는 나무를 자라게 하기도 하고,

죽은 나무를 말려 땔감으로 만들기도 한다.

열매없이 거룩한 것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굳게 하는 것도 없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특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해같이 빛나는 특권 아래 있으면서도

결실하지 못하는 불모지같이 남아 있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여러분이 엄청난 특권을 누리면서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완고한 마음으로

세속에 물들어 있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부모의 신앙을 힘입어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부모가 아닌 여러분 자신이 생명의 떡을 취하고,

마음에 성령의 증거를 가져야 한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여러분이 믿고, 여러분이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롯의 처와 다르지 않다.

깨달음과 지식과 좋은 설교와

많은 은혜의 방편과 거룩한 친구는

다 크나큰 복이고 특권이다.
이런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이 모든 특권들을 다 가졌다 해도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롯의 처는 많은 특권을 누렸지만, 은혜가 없었다.


2. 롯의 처가 지은 죄

그녀가 지은 죄에 대해 성령은 아주 간단한 말로 언급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죄의 실체가 한 마디에 다 들어있다.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1) 뒤를 돌아본 행위 자체는 사소한 것이지만,

    이것으로 롯의 아내의 진짜 성품이 드러났다.

아주 미미한 증세가 때로 치명적인 불치병의 증세일 수 있다.

하와가 열매를 따먹은 것 자체는 아주 미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행위는 그녀가 흠이 없는 상태에서 떨어져 죄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오라기의 짚을 통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번의 시선이 죄인의 타락한 마음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다(마5:28).

2) 뒤를 돌아본 행위 자체는 사소한 것이지만,

    롯의 처의 경우, 그 행위는 불순종을 의미한다.

천사의 명령은 아주 직접적이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삼상15:22-23).
하나님께서 성경이나 설교자를 통해 명백히 말씀하실 때, 인간이 할일은 분명하다.

3) 그 행위는 거만한 불신앙을 보여준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설마 소돔을 멸하실까 하고 의심을 한 것 같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주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될 때,

우리가 할일은 평강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4) 그 행위는 세상을 은밀히 사랑했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몸은 소돔을 빠져나왔지만,
그 마음은 아직 소돔을 떠나지 못했다.

집을 도망쳐 나올 때, 마음을 두고 왔다.

나침반 바늘이 항상 북극점을 가리키듯이,

그녀의 눈은 자기 재물이 있는 곳을 향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약4:4).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주님께서는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다가

멸망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롯의 처를 통해 우리가 배우기를 바라셨던 것은,

세속성에 도사린 엄청난 위험이다.
우리 모두 이 위험을 볼 수 있는 눈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요즘처럼 교회에서 세속성에 대한 경고를

소리 높여 외쳐야 했던 때도 없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질병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어둠 속을 어슬렁거리는 흑사병이며,

벌건 대낮에도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갔고,

심지어 강건했던 사람들도 상함을 입었다.
그녀는 살인자도, 간음자도, 도적도 아니었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나중에 불신앙으로 떨어져버리는

믿는 가정의 자녀가 얼마나 많은가!

 

그 좋은 신앙들이 아침 구름처럼

금새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한때 전도유망하게 보였던 영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세상에 대한 사랑에 막혀 사라졌다.
그들은 롯의 처가 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고 있다.

결혼한 많은 부부가 자녀를 낳아 기르기 전까지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자녀를 낳아 키우기 시작하면 신앙에서 멀어진다!

세속이라는 누룩이 이들의 습관과 옷차림과

오락과 시간 사용에 조금씩 번져 간다.
그들은 변했고, 세상의 영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지금 롯의 처가 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고 있다.

스물, 스물한 살까지는 성실히 신앙생활 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젊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점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대신해 마음을 채우기 시작한다(고후4:18).

메뚜기 떼처럼 그들의 영혼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다 갉아먹어 버린다.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열심도 그친다.

처음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열심을 냈다가,

지금은 미지근하고 형식적이고 냉담해진 세례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른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말씀을 막아서 결실하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재물과 명성과 학식에 더 마음이 간다.
영적 능력은 다 꺼져 버리고 다 식어서 차디차게 되었다.

한때 그토록 눈부시게 타오르던 불꽃을 이 세상이 꺼버렸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열심히 섬기다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데릴라로 대변되는 세상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

그 능력을 다 잃어버린 삼손같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갈3;3)

 

그들은 부자로 살기 원하고, 세속적인 여인과 결혼한다.
살을 에는 듯한 세상의 서리는

이전에 전도유망했던 영적 꽃봉오리를 다 떨어지게 만든다.

그들의 설교는 이전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을 잃어간다.

점점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고,
“극단적인 견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병적으로 신경 쓴다.

 

한때는 사도의 진정한 계승자요, 그리스도의 용사처럼 보였던 사람이,

정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고 외식이나 하면서 소일하는,
아무에게도 거슬리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는 목사로 전락하고 만다.
세상이 그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버렸다.

신앙이 있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교묘한 말로 자신의 양심을 눈멀게 하고,

“지위에 따른 의무”나, “세련된 삶”이나,

“기쁨에 찬 신앙생활”을 들먹이면서

자기 속에는 분명히 세속성이 없다고
핑계대는 것을 보노라면 참 마음이 슬퍼진다.

성공을 확신하며 웅장하고 화려하게 삶의 항해를 시작했지만,

세속성이라는 큰 구멍이 생겨서 안전한 항구를 목전에 두고도

모든 화물과 함께 침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야곱과 다윗과 베드로와 함께 시작했지만,

에서와 사울과 가룟 유다와 같이 끝맺는다.
룻과 한나와 마리아처럼 시작했지만,

롯의 처와 같은 종말을 맞는다.

믿음이 있는 여러분, 행복하기를 바라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결코 타협하지 마시라.

마치 흥정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는 마음을 거의 드리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최대한 많이 얻으려고 하지 마시라.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다가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모든 마음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라.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시라.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마6:33).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영혼을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유익하게 쓰임받기 위해서라도

롯의 처와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


 3. 하나님께서 롯의 처에게 내린 징벌

그녀는 순식간에 살아있는 육신에서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
정말 끔찍하고 두려운 결말이다!

아주 절망적인 결말이다.

하나님은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엄히 벌하시고,
주신 특권을 오용하는 자에게 가공할 만한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롯의 처와 같이 빛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고,

지옥은 실재한다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최근에 거짓 교리가 홍수처럼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지옥과 마귀와 징벌에 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가르침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이라고 한다.

 

지옥에 대해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껄끄럽고, 거북하다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반드시 직면해서 분명히 다루어야 한다.

 

저는 아무리 혼자일지라도 결연히 옛 자리를 지키고,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을 주장할 것이다.

지옥의 문제는 전체 복음의 근간에 자리한 물음이다.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과 그분의 정의와 거룩과 성결이 모두 이 문제와 결부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인격적인 믿음의 필요와 성화가 모두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지옥에 대한 옛 가르침을 거부하면

모든 기독교 신앙의 체계가 흔들리고,
나사가 빠지고 핀이 뽑힌 것처럼 무질서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지옥을 분명하게 말한다.
성경이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논증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인다.

1)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죄인을 대신해 죽게 하셨다고 가르치는 바로 그 성경이,

하나님은 본질상 죄를 미워하시고,

죄에 탐닉하는 자를 반드시 벌하시고,
이런 자들의 구원을 거부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라고 불신앙에 대해서 선언한다.

2)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실 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완악한 자를 벌하시고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무수한 증거들이 성경에 나타난다.
“악인이 스올로 돌아감이여”(시9:17).

3)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말씀하신 분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는 두려운 사실이 나타나 있다.

지옥, 격심한 고통, 영원한 멸망, 심판의 부활, 고통받는 곳,

바깥 어두운 곳, 벌레도 죽지 않는 곳,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

영원한 형벌 등의 표현은 지옥을 가리키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용하신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모범대로 가르치려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4) 우리가 지옥의 실재 혹은 영원성을 부정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천국의 복락도 사라지고 만다.

 

성경은 지옥의 영원성을 천국의 영원성만큼이나 분명히 확증하고 있다.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면, 하나님과 천국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영벌”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가

“영생”(마25:46)이라는 말에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고,

사도 바울도 “영원하신 하나님”(롬16:26)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

지옥의 실재는 성경의 진술과 일치한다.

신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자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파수꾼은

태만함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한다.

설교에서 지옥을 언급하지 않는 목회자는 신실한 목회자가 아니다.

그에게는 사랑이 없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감추는 것을 어찌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귀를 돕는 것이다(겔18:4,20).

만약 목회자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지옥에 관해 더 신실하게 설교하고 촉구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건강하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잘 들으시라.
자신의 신학에 지옥을 포함시키시라.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는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원리를 분명히 하시라.

 

천국의 지복의 기초를 놓으신 영원한 경륜으로

비참한 지옥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라.

오, 오늘날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성경 전체를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건강하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간청한다.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지 않는 목회를 조심하시라.

이런 목회가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러분을 어르고 달래서 잠들게 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어떤 부분이라도 누락한다면,
그것은 곧 전체를 망치는 일이다.

허다한 관점과 지식과 신앙고백이 난무하는 이 때에

영혼의 파선을 막을 표지를 띄우고자 한다.

모든 영적 항해자들이 지나가는 수로에 부표를 띄우고

그 위에다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크게 쓰고 싶은 것이 제 심정이다.

1) 그리스도의 재림에 별로 관심이 없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소돔 사람들과 같고, 노아 때의 사람들과 같다.

조심하시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2) 미적지근하고 냉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두 주인을 섬기려 하고,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짝하려고 애쓴다. 영적인 박쥐가 되려 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3)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광야와 만나에 싫증내고,
할 수만 있으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4) 은밀히 즐기면서 버리지 못하는 죄가 있는가?

숨은 세속성, 탐욕, 정욕이 거죽처럼 달라붙어 있다.

다른 우상은 기꺼이 부수면서 이것만은 부수지 못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5) 현저하게 드러나지 않는 죄는 시시하게 여기는가?

슬프게도 많은 이들이 그렇다!

6) 신앙적 특권에 안주하고 있는가?

7) 종교적 지식을 신뢰하는가?
 8) 신앙을 고백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과 짝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9) 임종 시에 회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가?


10) 복음주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

매 주일마다 진리를 듣지만, 여전히 냉랭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계속해서 듣기는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죄와 짝하고 있다.

러분이 그런 사람이라면, 조심하시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중한 말씀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우리가 잠들려고 할 때 우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처럼 느껴질 때 우리를 소생하게 하고,
둔하고 무디게 느껴질 때 우리를 예리하게 하고,

냉랭하고 차갑게 느껴질 때 우리를 뜨겁게 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뒤로 물러나려고 할 때,

이 말씀이 우리를 다그치는 박치가 되고,
딴 길로 가려고 할 때 우리를 저지하고 데려오는 고삐가 되기를 바란다!

 

시험이 찾아올 때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영혼아, 너를 구원하신 이의 경고를 기억하라!

영혼아, 나의 영혼아, 그분의 말씀을 잊었느냐.
영혼아, 나의 영혼아, 롯의 처를 기억하라!”

 

 

- 존 라일, 『거룩』, 10장 '기억해야 할 여인', pp 339-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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